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넛크래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은 철강 관세 부과를 볼모로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반중(反中) 전선을 구축하는 등 편 가르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선 철강 관세 부과 칼날을 피하기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서울에서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을 시작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00여개 중국산 수입품에 64조원 관세 부과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미중 무역전쟁 가능성이 더욱 커져 우리 통상당국으로서는 두 강대국 사이 어느 편에 선뜻 서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2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22~23일 이틀에 걸쳐 서울에서 중국과 한중 FTA에서 서비스·투자 분야 후속협상을 개시한다. 2015년 발효한 한중 FTA 본협상에서 유예해뒀던 서비스·투자 분야의 자유화 방식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목적이다. 한중의 통상 문턱이 더 낮아진다는 의미로 두 국가의 경제친밀도는 더 높아진다. 우리 정부는 그간 서비스·투자 부문의 장벽을 낮추기 위해 중국 측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기가 공교롭다는 점이다. 미국은 23일(현지시간)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최종 확정한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관세 면제국 잠재 대상국들과 막바지 협상을 하고 있다. 관세 부과의 칼날이 중국을 향해 좁혀들고 있는 상황. 특히 EU와의 협상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WTO에서 중국의 행동에 대항하는 미국에 협력하라는 명시적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국제 무대에서 반중 전선 구축을 본격화한 것이다.
통상 당국에 비상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EU에 내건 조건의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WTO에서 미국과 중국이 다투고 있는 분쟁의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 개정 협상이라는 노림수가 있기 때문에 당장 철강 협상에서 이를 요구했을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허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를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힌 만큼 줄 세우기를 요구하면서까지 전선을 확대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중 갈등 격화로 우리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철강 관세 부과가 시행과 함께 미국이 600억 달러(한화 약 6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편 가르기도 노골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경제지위 획득을 놓고 2016년 시작된 중국과 미·EU간 분쟁의 윤곽이 잡히는 올 하반기가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허 교수는 “시장경제 지위를 놓고 벌어진 미국과 EU, 중국 간 분쟁 결과가 하반기 나올 수 있는데 결과가 어찌 나오든 우리 통상정책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경제와 안보가 같이 간다는 철학을 가진 래리 커들러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으로 내정된 만큼 자칫 우리도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