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 개헌안 발의

홍완식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 다수 공감할 합의부터 이끌어야

38년 만에 대통령이 발의하는 개헌 논의의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당초의 21일에서 오는 26일로 늦추도록 지시했다. 청와대는 국회가 6월 지방선거 때 동시 개헌 투표에 합의하면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거나 철회할 가능성도 열어뒀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청와대가 지방선거 승리만을 위해 ‘관제 개헌’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국회법 112조 4항은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20일의 공고기간을 거친 뒤 국회가 60일 안에 기명투표 표결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인 개헌 발의 찬성 측은 대통령이 이번에 인권과 민주주의 개헌안임을 강하게 입증해야 하며 개헌안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국가체제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대통령 발의가 현재 국회의원 의석 분포상 부결이 확실시되는 만큼 또 한 번의 개헌 기회를 날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1항에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더욱이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정치적으로도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압박 수단이 돼 국회 합의를 종용하는 효과를 보는 강점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간 여러 차례 무산된 개헌을 이번 기회에 이루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대해 신중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에게 개헌의 발의 과정과 내용이 일방적이라고 비쳐지는 것은 통합과 협치라는 시대정신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선거 직전에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무지의 베일’ 상태에서 후보자들이 약속한 개헌 논의에 이제 와 협조하지 않거나 무산시키려는 야당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개헌 논의의 주된 쟁점이 돼야 하는 것은 개헌 여부가 아니라 당연히 개헌의 내용과 범위다. 개헌 후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헌법의 전반적인 내용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개헌 범위에 대해서도 합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헌법은 국민의 일부 진영이나 어느 한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건 진보건 여당이건 야당이건 구세대건 신세대건 일부의 의견과 주장만이 반영되는 개헌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회의 의석 분포상 이뤄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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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개헌안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헌법 전문이 바뀐다고 구체적인 헌법 해석이 달라질 수가 없는 것이라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역대 헌법 논의에서 경제 조항과 영토 조항은 판도라의 상자로 불릴 정도로 논란이 심했기에 헌법 해석으로 나름 해결해온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 등 직접민주제 도입의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는 결국 법률 사항이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으로 헌법에 수용될 수 있다.

지방분권의 필요와 당위가 절실하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와 수준은 급격해 보이지 않도록 조정될 필요가 있다. 기본권 분야에서는 논란이 있는 몇 가지 이슈만 제외한다면 합의 가능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간의 헌법 해석과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차원에서 30년이 지난 현행 헌법의 기본권 규정을 업데이트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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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 부분에서는 여러 정당의 입장과 정치적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정부 형태의 변화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의 ‘분권’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권력구조 분야에서의 합의가 이뤄질 수 없다면 국민적 합의가 가능한 범위에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 형태에 관해서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과 여러 정당의 주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존중돼야 한다. 특히 정부 형태를 어떻게 다뤄야 권력이 분산되면서도 원활한 국정운영이 이뤄질 것이냐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정부 형태의 선택 문제는 이해득실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공정한 권력배분을 위한 분권적 제도를 새로운 헌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합의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분권은 결국 선거 및 정당제도 등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의 개정이 더욱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이 동반되지 않는 헌법만의 개정은 의미가 크지 않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여야를 막론한 모든 정치인과 공무원이 견지해야 하는 자세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의 방식과 내용이 다시 검토돼야 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경우 현재의 국회의원 의석 분포상 국회에서 부결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수차례 무산된 개헌 기회를 다시 한 번 날리게 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개헌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헌은 되지 않더라도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만은 지키겠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이번 기회에 개헌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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