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WHAT] 두테르테 뒤따르는 트럼프...의도는 마약잡기? 권력다지기?

■스트롱맨들의 마약과의 전쟁

美 마약·약물 오남용 사망자, 교통사고보다 많아

트럼프 "최고 사형" 극약처방 나섰지만 효과는 '글쎄'

"사회질서 확립" 내세워 권력기반 강화 도구로도 쓰여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초강경 마약대책 곧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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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범죄자에게 자비는 없다.” 아시아의 ‘스트롱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2016년 6월 ‘무관용의 원칙’을 내세우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100일 만에 필리핀 경찰은 약 3,700명의 마약 범죄 용의자를 사살했다. 경찰에게 초법적인 살인을 허용하는 등 무자비한 마약 사범 단속을 계속하자 필리핀 국내외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높아졌다. 하지만 두테르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두테르테의 공포정치를 지켜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를 마약 척결의 모범 사례로 삼은 트럼프 대통령은 두테르테를 따라 최근 ‘사형’이라는 초강력 무기를 꺼내 들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뉴햄프셔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 불법상들에게 강경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며 “이들에 대한 궁극적인 벌은 사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물 및 마약 불법 거래상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뉴햄프셔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10만명당 39명으로 미국에서 약물 중독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President Donald Trump speaks before he signs a presidential memorandum imposing tariffs and investment restrictions on China in the Diplomatic Reception Room of the White House, Thursday, March 22, 2018, in Washington. (AP Photo/Evan Vucci)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에서 마약 퇴치 프로그램에 ‘전쟁’이라는 수사가 붙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다. 당시에도 강력한 처벌을 내놓았지만 소탕은 결국 실패에 그쳤다. 사형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극약 처방이 효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료·인권단체의 반발을 무릅쓰고 사형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꺼내는 것은 미국의 마약 및 약물 중독 문제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다량 섭취하면 일반 마약처럼 환각 작용을 일으키지만 말기 암환자부터 일반 외상환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처방되고 있는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중독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2016년에만 당시 미국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넘는 9,180만명이 오피오이드 처방약을 복용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애리조나주에서는 일부 마약상들이 만든 위조 오피오이드 의약품이 7만여정이나 발견되기도 했다.

약물 중독이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사망자도 급격히 증가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6년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4만2,249명으로 같은 해 유방암(4만1,952명)과 교통사고(3만8,748명)로 사망한 사람보다 많았다.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급증하면서 2016년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8.6세로 전년에 이어 2년 연속 낮아졌다. 이는 치명적인 독감이 유행했던 1962~196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회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에 따르면 2015년 오피오이드 남용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은 5,04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2013년 오피오이드 중독 문제로 785억달러의 비용이 발생했다는 한 사설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2년 만에 무려 6배나 급증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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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 약물 중독과 관련해 초강경책을 내놓는 국가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마약 남용이 원재료를 주로 생산·유통하고 있는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오래전부터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가운데 터키·이란·베트남 등 각국은 처벌 수위를 사형까지 확장하고 있다.

국제위해감축협회(HRI)에 따르면 현재 마약 범죄 관련 사형 집행이 합법인 국가는 총 33개국으로 중국·이란·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최소 5개국에서 실제 집행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사형 집행 건수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총 1,320건(중국 제외)에 달했다. 권위주의 국가나 ‘스트롱맨’이 이끄는 국가들이 유독 마약 단속에 엄격한 것은 마약과의 전쟁이 사회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살리면서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향후 2년간 마약을 집중 단속하기 위한 초강경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사형이 마약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다수의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마약정책연합(DPA) 사무국장 마리아 맥팔랜드 산체스 모레노는 “가혹한 형량이 마약 거래를 줄이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마약 거래의 음성화를 부추기고 비위생적 환경을 초래해 다른 전염병을 유발하는 등 종종 역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 역시 1986년 레이건 행정부가 실패한 마약 퇴치 프로그램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남미-미국으로 이어지는 마약 시장이 거대해지자 공급 무력화에 초점을 맞춘 마약 퇴치 프로그램을 발동해 남미 여러 국가에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진행했지만 이로 인해 군부와 반군 간 폭력과 인권 피해 사례만 급증했다. 미국 내에서도 마약상 단속을 위해 처벌 수위를 강화하면서 1980년 4만명이었던 마약 범죄 구금자들이 2015년 46만명으로 급증했다.

필리핀에서도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진행된 무자비한 마약 단속으로 약 4,000명이 초법적인 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조사에 나서는 등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앰네스티는 최근 필리핀의 마약 사범 진압 과정에서 최대 60명의 미성년자 피해자가 발생했다며 ICC의 개입을 촉구했다. 모레노 사무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마약 전쟁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형을 통한 공급 단속보다는 중독 치료와 마약 시장 규제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전했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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