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休]흐드러진 붉은 유혹…南에서 온 봄의 유혹

향긋한 꽃내음 전남 강진

백련사 아랫마을에 핀 홍매화.백련사 아랫마을에 핀 홍매화.



강진에 꽃이 피었다. 이미 지난주부터 나뭇가지에 움이 트는 모습은 관찰했지만 소담스러운 꽃을 본 것은 지난주가 처음이다. 서울에는 찬바람이 불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국토의 서남단 전남 강진군에는 봄과 함께 화신이 상륙했다. 육지 깊숙이 치고 들어온 강진만의 물결에 묻어 들어온 봄기운을 마중하고 돌아왔다.

강진 꽃소식은 백련사에 모인다. 그도 그럴 것이 백련사가 자리를 튼 도암면은 최남단 신전면과 인접해 강진만의 남해를 굽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백련사 동백 숲 부도(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 앞에서 파도에 실려 오는 봄바람은 푸근하고 봄볕은 나른했다. 절을 둘러싼 동백 숲은 푸르다 못해 검었고 동백 잎의 밀집(密集)에 튕겨 나간 햇볕은 바닥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동백군락 아래는 대낮에도 어두워 가지에서 떨어진 붉은 꽃잎만이 빛났다. 백련사 동백 숲은 기자가 가 본 동백군락 중 가장 조밀했는데 그래서인지 개별의 동백꽃은 굵고 소담스럽다. 꽃송이의 숫자도 많다. 타지 동백은 짙푸른 잎의 위세에 눌린 꽃송이가 주눅 든 것처럼 보이지만 백련사 동백꽃은 고개를 치켜들고 도드라진 붉은빛을 발산한다. 동백은 가지에서 절정을 맞고 바닥으로 산화(散花)해 대지를 덮었다.


꽃길을 걸어 백련사의 서편으로 접어드니 다산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이 1801년부터 1818년까지 열여덟 해의 유배 기간 중 10년을 기거한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목민심서 등 500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초당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10분쯤 이어지는데 오솔길 사이로는 성급한 진달래들이 꽃을 피웠다.

가우도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소의 멍에처럼 생겨서 멍에가(駕), 소우(牛)자를 써서 가우도(駕牛島)라는 이름이 붙었다.가우도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소의 멍에처럼 생겨서 멍에가(駕), 소우(牛)자를 써서 가우도(駕牛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련사 동백숲 앞, 봄바람 푸근

가지마다 소담스런 꽃망울 활짝

오솔길 벗어나니 매화향에 흠뻑



오솔길을 벗어나니 민가 몇 채가 모여 있다. 이곳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백매화·홍매화는 풍성했고 산수유도 절정을 넘어선 듯싶었다.

꽃구경을 마친 후 발길은 가우도(駕牛島)로 향했다. 장흥에서 흘러오는 탐진강이 폭을 넓히면서 만(灣)을 형성한 강진군은 지도를 펴놓으면 형상이 영락없는 빨래집게 모습이다. 강진군은 그 모양에서 착안해 ‘A로의 초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진만 서쪽의 도암면·신전면과 동쪽의 칠량면·대구면 사이에는 가우도라는 섬이 있는데 섬의 좌우를 다리로 연결해 강진군은 ‘A’자 모양을 완성했다.


11가구 33명이 사는 가우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소의 멍에처럼 생겨서 ‘멍에 가(駕)’에 ‘소 우(牛)’ 자를 써서 이름이 붙었다. 가우도의 아이콘은 섬 정상에 우뚝 선 청자전망대인데 지난해 초에 완공해 집트랙 출발대로 이용하고 있다. 청자전망대의 외벽은 온통 유약을 발라 청자로 만든 타일로 장식돼 있다. 타일마다 사람들의 기원과 소망을 적어놓은 것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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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은 원래 청자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이 같은 명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지난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청자운반선이 발견되면서부터다. 한 어부가 잡아올린 주꾸미에 매달려 올라온 청자로 인양작업이 시작돼 운반선을 발견했고 수습된 목간(木簡·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사용하던 나무조각)에서 강진 청자를 개경으로 운송하던 중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인관은 1인당 9,000원으로 한정식을 맛볼수 있는 식당이다.수인관은 1인당 9,000원으로 한정식을 맛볼수 있는 식당이다.


‘A’자 모양 다리 통해 가우도로

섬 정상엔 청자 외벽 전망대가

푸짐한 9,000원 한정식은 덤



이로써 강진은 고려 시대부터 청자의 본산이라는 것이 입증됐다. 강진의 고려청자박물관은 청자와 관련된 유물의 전시·수집·조사, 역사적 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전시해놓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박물관은 강진군에서 발견된 188개의 가마터 중 41호 가마 옆에 세워졌다. 가마터는 일제강점기 나가시마라는 일본 사람이 발견해 총독부에 보고했고 중요성을 인지한 총독이 두 번이나 방문하기도 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해방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난 1960년대에 들어서야 위당 정인보 선생의 아들인 고(故)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발굴작업을 진두지휘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구면 청자촌길 33.

한편 개성의 고려 유적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우리 측 연구원들은 현지에서 발굴한 기와가 강진에서 만든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로써 고려 시대에는 강진이 청자의 본산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호남의 대부분 지방이 그렇지만 강진도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 난 고장이다. 특히 근동에서는 ‘먹을 것 씀씀이가 헤프다’고 타박을 할 정도로 미각이 발달한 곳이다. 강진에는 비싼 한정식집이 있어 전라도 정식을 맛볼 수 있지만 강진의 맛집 탐방이라면 9,000원짜리 값싼 한정식 순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저가 한정식집이 몇 곳 있는데 터줏대감인 설성식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수인관이다. 수인관 역시 홍어회·돼지불고기·족발 등 한 상에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올라온다. 맛도 어느 것 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다. 설성식당은 손님 숫자가 몇 명이든 무조건 4인분 가격을 받지만 수인관은 2인분 이상이면 제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병영면 병영성로 107-10. (061)432-1027 /글·사진(강진)=우현석객원기자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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