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한미 환율 이면합의설 논란]정부 "협상대상 아니다" 부인에도...사실땐 '제2 플라자 합의''

USTR, 한국을 환율개입·조작국으로 사실상 명시

FTA와 별도로 내달 15일 전후 합의 도출 가능성

"美는 큰그림 보는데 우리부처는 따로국밥" 비판도




28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에 대한 새로운 통상정책과 국가안보 성과’ 보고서에는 강력한 표현들이 담겨 있다. 문서는 우리나라와의 환율합의(Currency Agreement)를 설명하면서 ‘경쟁적인 평가절하(competitive devaluation)’나 ‘환율조작(exchange rate manipulation)’ 같은 표현을 썼다.

기획재정부는 “주요20개국(G20)이나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매번 나오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USTR가 이런 부분을 문제 삼거나 요구한 게 아니라 협상 성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보고서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인위적인 통화절하와 환율조작을 해왔으며 우리 정부가 이를 인정한 꼴이 된다. 이마저도 미 재무부가 한국 기재부와의 협상을 ‘주도(The US Department of the Treasury is leading discussions)’하고 있다. 같은 날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Fact Sheet)’에는 평가절하나 환율조작 등의 말은 없지만 우리나라에 ‘불공정한 환율 관행(unfair currency practices)’이 있다고 못 박았다. 과도한 내정간섭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 팩트시트(FactSheet)에 한국과 ‘경쟁적인 평가절하(competitive devaluation)’나 ‘환율조작(exchange rate manipulation)’을 금지하는 합의에 근접했다고 공개했다.  /사진=USTR 홈페이지 캡처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 팩트시트(FactSheet)에 한국과 ‘경쟁적인 평가절하(competitive devaluation)’나 ‘환율조작(exchange rate manipulation)’을 금지하는 합의에 근접했다고 공개했다. /사진=USTR 홈페이지 캡처


물론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환율 부문에 대한 합의는 없으며 합의할 수도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외환위기 경험이 있는데 환율을 대외 협상의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정치적이나 국민 감정상 할 수 없는 것”이라며 “환율은 온 국민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변수인데 양자 간 협상의 변수로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환율은 언급하지 않았다”며 “미국이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극적인 효과를 높이려고 묶어서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도 환율 부문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협의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미국 정부의 4월 환율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협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해각서(MOU) 체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추가로 시장개입 공개도 준비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환율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핵심은 공개”라며 “우리는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되 미세조정만 하고 있으며 미국 환율보고서가 6개월간의 시장 개입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환율정책과 동향에 대한 협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달 15일 전후로 환율과 관련한 한미 간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FTA가 아닌 별도 협정이 될 확률이 높다. 기재부도 “한미 FTA는 끝났으며 부속서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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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정부가 한미 FTA 및 철강을 환율과 분리 대응하는 데 의구심을 제기한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부문별로 손익계산을 맞추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백악관, 우리나라는 청와대에서 모든 협상을 총괄·지휘하고 보고를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패키지 협상을 하면서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환율과 FTA를 연계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통상과 환율은 협상 주체도 다르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의 해명처럼 일괄 협상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정부가 ‘따로국밥식’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이슈를 연계해 큰 그림에서 보는데 우리는 부처별로 자기 것만 본 결과”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향후 세부합의 내용 공개 정도에 따라 외환시장과 국내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이라는 무기를 빼앗기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치명타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수출기여도는 71%다. 실제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원화 약세에 따른 제조업 수출 증가로 극복했다. 특히 지금처럼 USTR가 나서 환율 합의를 거론하는 상황에서는 ‘스무딩오퍼레이션(미세조정)’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자세한 협상 내용이 나와 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미국 정부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올 경우 우리에게 보장된 미세조정 권리조차 제대로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김영필·강광우기자 susopa@sedaily.com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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