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덩샤오핑 여동생 방한? 30년 전 외교문서 속 한중관계

■1987년 외교문서 공개

주미대사관 통해 연락 오자 내밀히 사실 확인

"덩샤오핑은 남동생 뿐 여동생 없어" 결론

당시 한중 무역 커졌지만 中, 北 눈치봐

덩샤오핑/사진출처=미국국립기록관리처(NARA)덩샤오핑/사진출처=미국국립기록관리처(NARA)



1987년 1월 17일 김경원 당시 주미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 앞으로 긴급문서를 보냈다. 제목은 ‘중공인사 방한희망’.

중공 최고 지도자인 덩샤오핑의 여동생 덩샤오푸가 방한을 희망하며 한국 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보내줄 수 있는 지 한국계 미국인 김모씨를 통해 주미대사관에 문의를 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덩샤오푸는 개인적인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한을 희망하고, 방한할 경우 일체 비밀로 할 것을 전제로 하면서 한국 측의 ‘정식’ 초청을 요망했다고 전했다. 이에 외무부는 긴급 확인에 들어갔다. 방한 의사가 사실일 경우 방한을 환영하고 대외비밀 유지도 보장하겠다면서도 덩샤오핑의 친여동생이 확실한 지 먼저 확인할 것을 주미대사관에 다시 지시했다. 이에 주미대사관은 ‘은밀하게’ 알아보겠다고 답했는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 덩샤오핑에게는 남동생만 2명이 있고 여동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중간에서 다리를 놓으려던 김모씨는 덩샤오푸가 덩샤오핑의 친척임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결국 덩샤오푸는 중공 내 정세변화로 방한이 어려워졌다고 다시 김씨를 통해 우리 측에 연락을 취했다. 결국 덩샤오핑 친여동생 방한 건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30일 비밀 해제 된 1987년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당시 우리 정부가 잠깐이긴 하나 긴박하게 움직였을 정도로 중국 최고위층 가족의 방한은 가능성 만으로도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대형 사건이었다. 북한과 관계도 의식해야 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과 중공이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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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에는 당시 중공시장의 특성으로 ‘세계 최대의 시장 잠재력 보유, 세계적인 자원 보유국이나 저개발상태’란 표현이 담겨 있었다. 또 중공과의 교역은 원칙적으로 교역이 불허된 상태이지만 홍콩 등 제3국을 경유한 간접교역이 묵시적으로 허용돼 있다고 서술돼 있다. 다만 중공 역시 한국과 교역 확대를 원하지만 “북한이 동의하면 직교역은 당연히 가능하다”는 식의 답변을 일본 언론인을 통해 전한 사실이 대외비로 기록돼 있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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