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북핵에 볼모잡힌 한미FTA...최악땐 협정서명도 불투명

트럼프, FTA-북미협상 연계 시사 돌출발언

"환율이면합의 논란도 있는데..."

당국 당혹감속 진의파악 분주

FTA 개정협상 미뤄지더라도

철강 관세 면제엔 영향 없을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북한과의 협상 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고 밝힌 뒤 정부는 적잖이 당혹해했다고 한다. 전날 “(한미 FTA의 개정은) 훌륭한 합의(great deal)”라고 치켜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말을 뒤집은데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환율 ‘이면합의’ 논란이 일고 있는 탓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는 매우 강력한 (협상)카드”라고까지 표현해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미 FTA의 최종 서명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정 협상을 끝낸 한미 FTA는 협정문 작성, 최종 서명, 양국 국회 동의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랑 한미 FTA를 어떻게 연결하려는 것인지, 이게 무슨 뜻인지, 진의가 뭔지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전날 한미 FTA 개정 협상, 철강 232조 관세조치 한국 면제와 관련해 “원칙적 합의에 이르렀다”고 공동선언문(Joint Statement)까지 발표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환율 이면합의 논란도 있는 마당에 솔직히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미 FTA를 북미 대화의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AP통신도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 한미 FTA를 지렛대로 삼으려는 차원”이라며 “이 발언은 남북이 정상회담 일정을 발표한 가운데 나왔다”고 보도했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본부장은 “타결이 됐다고 해도 발효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북미 협상 이후로 미루는 게 별 의미가 없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정치적으로 써먹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미 해빙 무드가 짙어지면서 흐트러질 수 있는 대북 압박 국제공조 태세를 사전에 다지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안보와 외교는 별개 사안이라며 선을 그어왔던 우리 통상 정책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외교·안보를 통상의 상위개념으로 봐서 외교·안보에 문제가 생기면 통상을 흔들지만 통상에 문제가 있다고 위를 흔들지는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미 FTA 개정 문제를 종결짓지 않고 그대로 두면 북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와 안보는 따로라며 사안별로 접근해온 미시적 통상정책의 틀은 안보까지 아우르는 큰 틀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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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대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분위기 전환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목소리를 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를 직접 언급하며 “미국과 한국의 FTA 개정과 철강 관세 협상 일괄타결은 미국으로서 대한(對韓) 무역적자를 개선하지 못하는 등 큰 실익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CNN머니 등 역시 미국이 한국 측 철강 관세 면제를 대가로 얻어낸 자동차 수입쿼터 확대의 경우 미국 자동차 산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전문가들은 한미 FTA 개정 문제를 다시 흔들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협상을 끝내고 타결을 공동발표까지 한 마당에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연계될 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미국은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기조의 ‘리비아식 해법’에 가까운 비핵화 구상을 갖고 있다. 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에서 단계적인 비핵화 의중을 드러냈고 청와대 역시 “북한에 리비아식 해법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동조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놓고 한미 간 이견을 드러낸 셈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북미 정상회담 때까지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철저히 공조하지 않으면 한미 FTA 합의를 재고해보겠다는 취지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이 미뤄지더라도 철강 관세 면제 협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당국의 한 핵심관계자는 “양국 통상장관이 5월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고 못을 박아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만큼 철강 협상은 그것으로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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