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사의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이 머지 않아 나타날 듯 싶다.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면 교실에서도 현장 못지 않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화성 행궁 축조 과정이나 정조의 행궁 행차 장면을 재연한 콘텐츠를 통해 훨씬 다양하고 깊이있는 역사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홍정민 휴넷 에듀테크연구소장은 “교육과 기술을 결합한 에듀테크가 보편화되면 학교 교육 환경은 물론 교사의 역할도 크게 바뀌게 될 것”이라면서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인해 교사의 역할도 지식 전달 위주에서 창의성·인성 함양을 돕는 조력자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AI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발달은 교육 패러다임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AI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교사와 교수와 같은 직업은 쉽게 대체되지 못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견해였지만 상황은 갈수록 이들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다. AI 로봇이 교사를 대체할 날이 곧 도래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 컴퓨터 사이언스과의 애쇽 고엘 교수는 지난 2016년 봄 학기 AI 수업을 위해 9명의 조교를 투입했다. 질 왓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왓슨은 온라인을 통해 ‘제출한 과제를 수정할 수 있나’ 등 학생들의 질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응답했다. 학생들은 그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20대 여성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IBM의 AI 소프트웨어 ‘왓슨’을 토대로 개발한 ‘채팅봇’이었다. 학생들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답했다.
현재는 조교 수준에 머물지만 AI 로봇이 교사, 심지어 교수 역할까지 수행할 수도 있다. 머신 러닝(기계 학습)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매일 생겨나는 빅데이터를 하루 종일 학습하며 나날이 똑똑해지는 AI를 인간이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AI가 알고리즘을 통해 학습자의 지식 수준과 심리적 상태를 파악, 1:1 맞춤형 강의를 제공하면 일반 교사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 미래학자들은 오는 2020년에는 73일마다 지식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각종 행정 잡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이 이러한 지식 홍수의 시대에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별로 필요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지금 학생들이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기술 발달은 교사와 학생 간의 경계도 허물고 있다. 강사와 학생이 다양한 자료들을 공유하고 개인별 페이지에 저장할 수 있는 사이트가 등장했고, 강사·학생 구분없이 다양한 강의 콘텐츠를 생성해 공유하는 플랫폼에는 1,000만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졸업한 교사들의 전문성은 인정하더라도 이들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고, 심지어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지식의 양과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기술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새로운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에듀테크를 학습에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토론식 수업과 팀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창의성과 협동성,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AI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이제는 지식 전달 위주의 수업·강의는 큰 의미가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문제를 푸는 능력 보다 문제를 제시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만큼 입시제도를 비롯해 기존 교육 제도·시스템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다면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은 요원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