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는 의심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다. 모든 국가 조세 정책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이런 원칙이 정권 따라 사안 따라 고무줄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어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2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이종구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근로소득 면세자 축소방안 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제목은 축소방안 검토이지만 결론은 ‘축소 정책’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근로소득 면세자는 전체 43.6%에 이른다. 명수로 따지면 774만명에 이르는 인원이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2015년 810만명에서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국민개세주의가 무색할 정도로 면세자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면세자 축소가 시급하다고 지적해 왔다. 현 정부 핵심 관료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2015년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최저임금 수준을 넘는 근로소득자는 모두 납세 의무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보고서에서 “인위적인 면세자 축소는 급격한 면세자 감소, 과도한 세 부담 증가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면세자는 임금 증가에 따라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하고 정책적으로 감소시키는 노력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2016년 중장기 조세정책운영계획을 발표하며 “근로소득세 제도 심층평가 등을 통해 면세자 비율 축소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만 해도 국민개세주의 실현이 중요한 목표로 제시됐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 ‘부자는 증세, 서민은 세 부담 증가 없다’는 원칙이 강조되자 면세자 축소도 없던 일로 만들었다.
정부는 당초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보유세 개편과 함께 면세자 축소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지금과 같은 기조면 논의 자체를 안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 정부 들어서도 특정 사안에 따라서는 국민개세주의를 강조하는 점도 비판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종교인 과세를 본격 시행했다. 종교인의 저항이 불거졌고 종교인은 소득이 적어 세입 측면에서 실효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이때는 국민개세주의 실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따라 종교인도 세금을 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특정 사안에서는 국민개세주의를 내세우고 다른 사안에서는 이에 눈을 감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민개세주의를 일관성 있게 실현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조세 정책에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정권에 따라 조세 정책 기본 원칙이 바뀌면 정책의 신뢰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당장 일부의 반대가 따를지라도 면세자 축소 역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정부의 정도(正道)”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