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이슈&워치] 美 압박에 속수무책…환율 세자릿수 가나

원달러 환율 3년5개월만에 최저치

외환주권 논란 美환율보고서 앞두

韓 환당국 시장개입 여지 봉쇄 당해

“(한국 정부와)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합의가 마무리 단계를 밟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이 한 문장이 한국 정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외환주권 포기 논란이 불거지는 등 후폭풍이 컸다. 우리 정부는 “강하게 항의했다”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시장 참가자들이 원화 강세에 베팅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5거래일 연속 떨어졌다. 2일에는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060원도 무너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6원90전 내린 1,056원60전으로 장을 마쳤다. 41개월 만에 가장 낮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환율 하락의 압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외환시장 참여자들은 “한국이 미국에 제대로 코가 꿰였다”고 해석했다.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에는 환율개입을 막는 조치까지 합의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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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가치 절상에 대한 압박은 미국의 과거 전략과 유사하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올라가면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철강에 관세 25%를 부과한 것처럼 수입품목에 보복관세를 매기는 게 첫 단계다. 다음 꺼내는 카드는 달러 가치의 인위적 하락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한편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을 살리고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주요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의 통화를 절상시키는 방식이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미국의 최종 타깃은 중국”이라며 “우선순위에 따라 한국을 먼저 공격한 뒤 최종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원하는 이익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원화 절상 압력이 더 세질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 외환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처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하는 게 원칙”이라며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 1,000원 붕괴가 머지않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환율개입 금지에 합의하거나 개입 내역을 공개할 경우 시장 안전판이 사라져 원·달러 환율은 올 하반기에 세자릿수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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