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앙된 미세먼지… ‘미세한’ 대책으론 안된다
설탕 알갱이를 1억2,500만개로 쪼갠 크기로 폐렴 등 감염성 질환, 심혈관계질환, 암을 유발하면서 전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물질. 한반도를 덮치며 ‘은밀한 살인자’로 떠오른 미세먼지 이야기다. 해마다 봄이 되면 미세먼지 ‘나쁨’이 일상화하고 ‘가스실 한반도’ ‘숨 막히는 한반도’ ‘미세먼지 한반도 공습’ ‘문명의 역습 미세먼지’ 등의 헤드라인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시민들의 봄나들이에 장애물이 생기며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처럼 기지개를 켜던 야외 일상생활이 다시 움츠러들고 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게 죄인된 심정” “둘째 포기” “이민 고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우성치고 있으며 환경단체들은 “정부, 국회는 뭐하고 있나” 라며 시위와 함께 정부 상대 소송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일시 멈추고 차량 2부제, 경유차 운행 제한, 대형 사업장 비상저감조치 등의 대책으로 관련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다른 한편에선 미세먼지 덕에 공기청정기,마스크 등 매출이 급증하는 등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대책은 재탕, 삼탕 수준의 뒷북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한반도는 사실상의 ‘속수무책 가스실’에 갇혀있는 상황이다.
“재난영화처럼 숨막히는 봄”...잿빛먼지와 전쟁 벌이는 시민들
미세먼지 ‘나쁨’이 연일 이어지자 시민들이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신문들은 앞다퉈 전하고 있다. “정부 못믿겠다...숨쉬는게 공포가 됐다” 뿔난 엄마들이 먼지측정기를 직접 사들고 교실의 공기질을 측정하고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기부하고 나섰다. “아이 못보내겠다...휴교령 내려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며 ‘미세먼지 결석’이라는 신종 용어도 등장했다. 우울감을 호소하고 바깥활동을 자제하며 ‘셀프감금’에 나서는 시민들도 늘고있다. 자기방어에 나서는 시민들이 늘며 마스크, 세안제,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구내식당은 바깥공기를 꺼려하는 직장인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또한 공공기관 주차장은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일환으로 폐쇄돼 썰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 사망자가 오히려 ‘주범 중국’보다 더 빨리 늘어날 수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2060년까지 100만명당 관련 사망자가 1,069명에 이를 수 있으며 최악의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미세먼지는 시민들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경제분야에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공기청정기, 마스크 등 ‘안티 더스트’ 산업이 주목받는 반면에 노량진 노점의 컵밥집과 떡볶이 가게는 개점휴업 상태고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길거리 음식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 주말 레저활동으로 떠오른 자전거 타기도 타격이 커지는 모양새다. 마스크, 세안제 등 의약품업계와 공기청정기 등 가전업계는 미세먼지 관련 제품 출시와 마케팅에 분주하지만 영세한 노점과 자전거,등산 등 레저산업은 타격이 커지고 있다.
일부 신문은 “가난하면 미세먼지 더 마셔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미세먼지 대응에도 빈부격차가 나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미세먼지 차단율 80% 이상인 1회용 마스크가 2,000~5,000원에 이르기 때문에 저소득층은 마스크도 없이 버텨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외 노동자들도 마스크 지급 이외에 미세먼지 관련 규정이 없어 ‘야외 미세먼지’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하고 있다.
“깨끗한 공기 속에서 살고싶다”...정부,시민이 함께 나서야
뒤늦게나마 정부가 미세먼지 기준을 강화하며 본격적인 대책 마련과 정책불신 지우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장 후보들은 “최악 미세먼지 내가 잡겠다”며 앞다퉈 저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시민들은 “말뿐인 캠페인만 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 내놔라”며 청와대 청원에 나서고 자구책 마련 등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정치권과 시민들의 안일한 대응을 꼬집는 제목들이 여전히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고농도 미세먼지에도 서울 소각장은 계속 연기 내뿜고...” “온 나라가 숨막히는데 법엔 ‘미세먼지’ 규정도 없다” “10명중 6명 마스크 착용안해” “시민들 차량 2부제 무관심” 미세먼지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속에서도 정부는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에 땜질 대책을 내놓고 정치권은 미세먼지 이슈가 부각된 후에야 부랴부랴 잠자고 있던 관련법안 심사에 나서고 뒤늦게 법안 발의를 하고 있다.
시민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는 했지만 ‘호흡 공동체’라는 심각한 인식을 갖고 미세먼지 대응에 적극 참여하고 함께 행동하는 수준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대중교통요금 무료조치까지 동원했음에도 실제 교통량 감소는 1.7%에 그쳤다는 뉴스는 ‘봄철 불청객’을 넘어 ‘국가적 재앙’이 된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태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조치를 수도권 민간사업장과 전국 공공기관으로 확대하고 R&D예산을 집중지원하는 대책을 내놨다. ‘다량 배출’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 감축 운영하고 한중 환경협력도 강화한다고 한다. 학교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마스크를 무상보급하겠다고도 한다. 추가 대책은 9월에 발표하기로 했다. 지방선거에 나서는 후보들도 저마다 미세먼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세먼지 심할땐 휴교령” “차량 강제 2부제” “경유차 단계적 축소” “자동차 배출가스 등급제 시행” “석탄화력발전소 봄철 셧다운제 시행” “인공강우 적극 도입” “취약계층 마스크 무상 공급” “미세먼지 저감 공동대책협의회 구성” 등이 그것들이다.
이제 ‘봄철 불청객’을 넘어 사시사철 발생하는 ‘은밀한 살인자’ 미세먼지. 중국을 주범으로 꼽지만 국내 발생요인도 30~50%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선 경유차량과 대형사업장이 주요 발생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수도권에선 경유차량이 가장 큰 배출원이며 전국적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공장과 같은 사업장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정부차원의 총력전과 중국과의 환경협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과 민간차원의 인식 개선과 적극적 참여,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언발에 오줌 누는 땜질대책을 벗어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라는 사설이 등장할 정도로 더욱 강력하고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보다 실효성 있는 법,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하며 시민들과 민간에서도 ‘호흡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고 미세먼지 저감조치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 대담하게 보완해야”한다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이 정부대책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이정법기자gb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