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비대해진 靑 장관이 안보인다] 인사 넘기고 책임장관제 한다더니…'도장만 찍는' 장관들

■집행기관 전락한 부처

재활용 대란 속 靑말한마디에 환경장관 행선지 바꾸고

암호화폐 거래 금지법 피랍 대응도 코드 맞추기 급급

최저임금 1만원 인상 공무원 증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文대통령 주도 정책들엔 브레이크 못걸어 혼란만 가중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불거진 지난 2일 오후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폐비닐 선별·재활용 업체를 방문해 현장 상황을 듣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금강유역환경청 업무보고 등 예정된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현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재활용 사태에 대해 “정부가 야단 맞아야 한다”는 질책이 흘러나왔다.  /연합뉴스‘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불거진 지난 2일 오후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폐비닐 선별·재활용 업체를 방문해 현장 상황을 듣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금강유역환경청 업무보고 등 예정된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현장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재활용 사태에 대해 “정부가 야단 맞아야 한다”는 질책이 흘러나왔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27명 가운데 25명의 임기가 오는 23일 만료된다. 위원이 새롭게 임명돼야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최저임금위의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에게 위원 구성의 진행상황을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위원 위촉은 청와대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 된다”였다. 고용부 장관이 제청하는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청와대 인사검증이라는 게…”라고 말끝을 흐렸다.

고용·법무 등 각각의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야 할 정부부처가 청와대의 집행기관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인사권과 정책 결정권 등을 각 부처 장관에게 넘긴다고 했지만 여전히 부처 1~2급은 물론 공공기관장 인사권을 통째로 움켜쥐고 놓지 않는 실정이다. 권한은 이양하지 않고 책임만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한 부작용도 곳곳에서 속출된다. 이런 가운데 공무원들은 현실성 떨어지는 공약에 브레이크를 못 걸고 정책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수도권 재활용 업체들이 폐비닐과 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하면서 재활용 대란이 발생했던 지난 2일 오후. 환경부는 기자단에 김은경 장관이 오후3시 광명시에 자리한 재활용 업체 태서리사이클링을 방문한다고 알렸다. 급작스럽게 금강유역환경청 업무보고와 퇴비나눔센터 설립·운영 협약식 등의 일정을 취소하고 현장에 가겠다는 예고였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재활용 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야단 맞아야 한다”는 질책이 흘러나왔던 터였다. 재활용 쓰레기 문제가 이미 한창 불거졌을 때인 지난달 30일까지만 해도 금강청과 옥천군청을 가겠다고 했던 김 장관은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행선지를 바꿨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월11일 신년 간담회에서 “암호화폐 거래가 투기·도박 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 장관은 “부처 사이에 이견이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자 이후 법안 제출 등의 후속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고용노동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17만명 증원 등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취임 후 처음으로 찾았던 곳도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그곳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했다. 청와대 행보는 근로시간 단축 등 큰 밑그림을 제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양대지침의 폐기 등 세부 현안도 직접 챙기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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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외교 업무에서 역시 주도권을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의 피랍 사건 관련 대응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피랍 선원들의 소재가 파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레 엠바고를 해제,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을 발표했다. 청와대에서 기존 매뉴얼을 무시한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3일 “납치 사건을 선사와 해적 간의 직접 대화에만 맡겨 놓고 정부가 뒤로 빠지는 게 맞느냐는 문 대통령의 고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부처의 청와대 코드 맞추기는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하는 교육 부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 및 수능 절대평가 도입을 공언했다. 문제는 수능 절대평가를 도입하면 변별력이 사라져 수시, 특히 학교생활기록부 종합 전형의 평가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와 수능 절대평가는 서로 상충한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청와대 독주에 어느 부처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주무부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부작용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때는 주요 지시사항 밑에 빨간 줄을 그어 내려보내기도 했다”며 “문제는 현 정부의 공무원들은 알아서 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만 ‘손타쿠’가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미숙한 대처도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는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뒤늦게 박 대통령도 ‘권고 대상’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문제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교육부는 앞선 정책 혼선과 발표자료의 잦은 오류 등으로 신뢰도가 추락하면서 기자단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는 서지현 검사발 미투가 문화계·노동계 등 각계에서 터지고 난 뒤 한참 후에야 ‘미투 간담회’ 등을 진행했다. /세종=임지훈기자 진동영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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