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칼럼> 논란 커지는 한미FTA 재협상 결과

손철 뉴욕특파원




미국과 중국이 연일 무역전쟁의 포성을 울리면서 지난달 26일 정부가 타결했다고 밝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결과와 철강 관세 면제(?)가 얼마나 부실하고 국익을 가볍게 여긴 것인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를 무시하고 일방적 ‘관세 폭탄’으로 무역제재를 하는 데 중국이 예상보다 강하고 담담하게 맞대응하는 과정이 생중계되면서 미국 측의 부당함은 도드라지고 그런 부조리에 일찌감치 무릎 꿇은 통상당국의 무능함은 부각되는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안보를 위해 FTA 등 통상에서 대폭 양보를 했다고 국민적 이해를 구한 것도 아니어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 전권을 위임받아 내놓은 결과가 미국의 배만 불리고 한국은 얻는 것이 없게 된다면 감사원 특별감사라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될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을 하면서 통상당국이 미국의 철강 관세 25% 부과를 면제받았다고 성과로 포장한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지난 2일 중국은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해 “WTO 규정을 남용한 것으로 부당하다”며 미국산 돼지고기·과일 등 128개 품목에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의 국력과 처지가 중국처럼 맞대응할 위치는 아니라고 해도 세계 무역질서를 어기면서 누가 갑질을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미국의 비위를 맞춰 FTA 재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대미 철강 수출이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명분은 잃었어도 실리는 취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강 수출 물량을 지난해 대비 30% 줄이고 주력 수출품인 강관은 50%나 축소하기로 했는데 이런 기막힌 굴레에 기한조차 없는 실정이다. 철강 업계에서 25% 관세를 그냥 맞는 것이 낫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큼 물량 축소는 관세보다 직접적인 타격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제재 방식만 달리한 것을 당국이 ‘관세 면제’라는 일부분만 조명해 호도한다며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고 비판한다.


협상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 본부장은 농축산 분야에서 미 측의 추가 개방 요구를 막아 ‘레드 라인’을 지켰다고 강조했다. 과연 이런 것이 성과인지도 의문이지만 미국이 얼마나 진지하게 농축산물 추가 개방을 요구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통상당국이 밀실 협상에 집착한 때문에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한미 FTA로 엄청난 이득을 본 미국 농축산 업계는 재협상을 말릴 정도였고 재협상을 앞두고는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는 것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당부 아닌 당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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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투자자국가소송(ISD) 문제를 개선했다고 통상당국이 주장하는 이면을 살펴보면 공무원들의 얌체 짓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ISD는 미국이 매우 중시하는 제도로 국내에 알려져 있지만 실상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러던 참에 한미 FTA에 앞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에서 캐나다가 폐지를 주장해 미국도 이에 동의한 마당이다. 정부가 ISD 개선을 위해 미 측 설득에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한 것이 없고 다른 무엇을 희생해야 할 필요도 없었던 셈이다.

이런 엉터리·깜깜이 협상 결과에는 정부가 내줬다고 실토한 자동차와 의약품 부문의 양보로 일어날 손실 등은 포함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조기에 미국과의 FTA 재협상을 마쳐 추가 통상압력의 빌미를 없앴다는 당국의 주장은 믿으려고 했는데 협정 타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미 측은 파장이 더 큰 환율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USTR는 사과·배 등 한국 과일 시장의 개방 문턱을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구촌 무역전쟁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내 불거질 이슈다. 수시로 논란에 휩싸이게 될 한미 FTA 재협상 결과는 10년 전 이상의 정치적 파괴력을 품고 있는 핵옵션이다. 정치권의 국정조사 요구가 있기 전에 특감으로 의혹들을 해소하는 것이 향후 파급력을 줄이는 길이자 정권이 바뀐 후 검찰이 정책을 손보는 비극을 미연에 막는 길이다.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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