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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이성의 진화]가짜뉴스·사기극에 현혹되는 '이성의 비밀'

■위고 메르시에·당 스페르베르 지음, 생각연구소 펴냄




출처 불명의 가짜뉴스에 현혹되는 이들부터 자신의 범죄를 입증하는 숱한 증거 앞에서도 결백을 주장하는 전직 대통령들까지 보고 있노라면 ‘이성이라는 녀석은 대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냐’는 물음이 불현듯 떠오른다. 수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이성은 완벽하지 않으며, 잘못 쓰면 인간을 오도할 수 있다고 설파했지만 이성에 대한 신봉은 어디 가지 않았다. 가짜뉴스와 온갖 사기극, 각종 혐오범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것은 이성의 힘뿐이라고 이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금이야말로 이성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런 태도는 이성이 직관의 오류를 수정해 우리가 더 나은 신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성을 올바른 선택을 위한 도구로 상정해두면 ‘확증편향’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견해를 뒷받침할 증거만을 기분 좋게 수집하며 반증에 눈을 감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과학자인 당 스페르베르와 인지과학자 위고 메르시에는 ‘이성’에 대해 다른 차원의 정의를 내린다. 이성은 개인 차원의 인지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에 최적화된 도구이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충분하지 않을 때 서로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올바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성은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떤 결정이나 입장을 지지하는 논증을 찾는 도구이자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유를 산출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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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확증편향이 집단을 지배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이면 각자가 제시하는 논거를 엄격하게 검증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도구로서 이성의 힘이 증폭될 수 있다. 저자들이 이성의 올바른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이유다.

이제 출발점을 달리해보자. 이성은 본디 자기정당화의 도구라고. 이성의 본질에 대한 전제 자체를 바꾸면 대화의 결도 달라진다. 각자가 가진 정답이 아닌 견해를 나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진짜배기 소통이 가능해지는 출발점이다. 2만2,000원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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