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사람]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 "시인 조지훈의 지조, 나를 지탱해준 힘..불혹 맞는 나남, 묵묵히 갈길 갈것"

고교시절 조지훈 강연듣고 감화

고고했던 그의 선비정신 늘 흠모

사옥·아들 이름도 '지훈'으로 작명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송은석기자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송은석기자



조상호 회장은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고(故) 지훈 조동탁 시인을 꼽는다. 서정적인 시풍의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조지훈 선생은 우국지사였다. ‘한국민족운동사’를 집필하고 자유당 말기에는 민권수호국민총연맹에도 참여할 정도로 현실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다.

조 회장은 광주고 재학 시절 당시 고려대 교수였던 조지훈 시인의 강연을 먼발치에서 보고 큰 감화를 받았다. 한복 차림의 고고한 모습에서 선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조지훈 시인이 1968년 4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면서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으나 ‘지조론(志操論)’을 읽고 사숙(私淑)하며 그의 선비정신을 늘 흠모했다. 나남출판의 옛 서초동 사옥 이름을 지훈빌딩으로 명명하고 아들 이름도 지훈으로 지은 것도 조지훈 시인에 대한 ‘오마주’다.

조지훈 시인에 대한 존경심은 나남출판 설립 후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한국민족운동사’를 단행본으로 펴낸 데 이어 1996년 ‘조지훈 전집’ 전 9권을 완간했다. 2001년에는 ‘지훈상’을 제정해 지난해까지 17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정신적 스승의 존재가치는 늘 그를 존경하는 사람의 현재를 그 스승이 감시하고 격려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내가 처한 이 입장을 스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행동이 스승의 기준에 비춰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하고 늘 자문합니다. 나를 엄격하게 지탱시키고 때로는 비빌 언덕이 돼주는 존재, 내게 선생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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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은 내년에 설립 40주년을 맞는다. 대학 시절 기자를 꿈꿨으나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경로를 바꿔 ‘나와 남이 어울려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20대 후반에 출판언론의 길로 들어선 조 회장도 어느덧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는 지금도 나남이 펴낼 책의 초고를 직접 읽고 손보며 ‘현역’으로 뛰고 있다.

특히 ‘사상의 저수지’로 일컬어지는 나남신서는 최근 1,960번째 책이 나왔다. 2,000번째 신서 출간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척박한 한국 학술출판 환경 속에서 쌓아올려진 화려한 금자탑이지만 조 회장은 나남신서 2,000호 출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 나남신서 2,000호도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쌓아올려진 것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과거에 비해 책을 덜 읽고 디지털 콘텐츠에 열광하는 세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 업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조 회장은 농반진반으로 “내년 창립 40주년 기념식을 북한 개성에서 하면 어떨까 싶다”면서 ‘불혹’을 앞둔 나남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고 정의의 강처럼 한국 사회의 밑바닥을 뜨거운 들불처럼 흐르는 어떤 힘의 주체들을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책들 속에서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땀 냄새에 취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책다운 책을 만들겠다는 자기암시로 어려움을 견뎌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나와 남, 나와 세계의 창조적 조화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나남이 걸어왔고 또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포천=성행경기자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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