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경남 창녕 태생이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경남도지사를 지낸 까닭인지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거세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이 고향 부산 억양을 많이 순화한 것 못지않게 부드러운 서울말을 구사한다. 방송기자 출신인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완벽한 표준어만큼은 아니지만. 경상도 남자들이 사투리를 ‘잘 못 고쳐서’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평양은 문화적으로 뒤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평양 출신의 문화인이나 예술가는 평양보다는 경성(서울)을 무대로 하고 활약해야 할 줄 압니다.”(평양 출신 시인 주요한)
“호남 사투리가 타지방, 가령 영남이나 관북·관서 등의 사투리에 비해서 그다지 구수하거나 아름다운 게 되질 못합니다.”(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
“내 고향 영남은 문학작품에 집어넣을 만한 찬란한 언어미를 갖지 못한 곳입니다. …영남말은 어휘가 적고, 발음이 정확지 못합니다.” (논산 태생 진주 출신 소설가 엄흥섭)
“관북은 기후가 차고 모든 것이 부드럽지 못한 탓인지…음(音)이 불분명해서 문학은커녕 사교나 연애에도 불리할 것 같습니다.”(함북 경성 출신 시인 김광섭)
이 무슨 지역 비하적 발언들인가 싶다. 한참 지난 옛 일이만 허투루 여길 것 아닌 연유가 있다. 일제 강점기이던 1929~1942년 간행된 대중월간지 ‘삼천리’는 1940년에 총 4회에 걸쳐 ‘향토문화’에 관한 지상 좌담회를 진행했고 참여 문인들의 원고를 연속해 실었다. 지역 방언을 부정적으로 인식한 문학인들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다. 근대국가 성립의 전제로 표준어에 의한 언어 통일이 요구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저변에는 조선총독부가 효율적 통치를 위해 일제강점 초기부터 퍼뜨려온 언어정책이 깔려 있다. 일제는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서 ‘현대 서울말을 표준으로 삼는다’고 명시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순전히 우리 손으로 만들어 공표·시행한 첫 어문규범도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인 표준말을 지향했다.
어느새 사투리는 표준적이지 않은 말이 되고 말았다. 방언 연구자인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역 언어 사이에 위계가 생겨난 과정을 살폈다. 지방어를 뜻하는 ‘방언’을 사람들이 언제부터 인식했는지 추적했다.
책에 따르면 일제시대 이전 조선 때만 해도 서울말과 지방어 간에 분명한 대립 구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1900년 10월9일자 황성신문에는 “경기도 말씨는 새초롬하고, 강원도 말씨는 순박하며, 경상도 말씨는 씩씩하다. 그리고 충청도 말씨는 정중하며, 전라도 말씨는 맛깔스럽다. 황해도 말씨는 재치 있고, 평안도 말씨는 강인하며, 함경도 말씨는 묵직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내용의 논설이 실렸다. 서울말이 다른 지역 말투와 비교해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표준어라는 개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19세기 제국주의나 국가주의 시대의 산물”이라며 “서양 제국주의 국가(일본 포함)에서 국민의 의사 전달 수단을 통일해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국에 대한 침탈을 도모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방 이후에는 정부주도의 국가정책을 펼치는데 용이하게 하려고 사투리는 분열과 비능률의 상징으로 치부됐다. 사투리는 ‘잡스러운 언어’ 취급을 받아 순화 대상이 됐고 전국적인 서울말 쓰기 운동이 펼쳐졌다.
책은 표준어와 방언의 대결사를 전개하면서 문학작품과 방송, 영화 등 대중문화 속 사투리 열풍을 수록해 읽기 수월하게 했다. 임권택 감독의 1993년작 ‘서편제’를 필두로 90년대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를 활용해 인기를 끈 캐릭터가 등장했다. 사투리에 대한 관용적인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사투리 캐릭터’는 ‘웃음 유발자’다. 저자는 “말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으로 그러한 말을 ‘틀렸다’고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방언 사용권이 존중되고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 표준어는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되는 권장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