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이사람] 조상호 나남출판·나남수목원 회장 "출판 통해서 지성의 숲 일구고 수목원으로 생명의 숲 가꾸죠"

-나와 남 어울림 세상 만들자

40년간 고집스레 사회과학서 출간

대표작 '나남신서' 1,960호 펴내

박경리 '토지' 등 문학작품도 발간

가끔 베스트셀러 나와주면 힘 생겨

-삶의 쉼터 되어준 수목원

출판업무 벗어나 숨쉴 공간 마련 위해

하나 둘 나무 심다보니 20년 흘러

3,000그루 반송들 보면 무념무상

나무를 닮고 나무처럼 늙고 싶어




일업일생(一業一生).

40년 가까이 책을 만들었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을 때부터는 나무를 심었다. 출판과 식목은 모순적이다. 한쪽은 나무를 죽여야 하고 다른 한쪽은 살리는 일이다. 같은 업이라 하기 어렵지만 둘은 일맥상통한다. 나무를 베어 만든 책은 사람을 키운다. 땅을 파고 물을 주며 땀 흘려 키운 나무들은 숲을 이뤄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출판을 통해 지성의 숲을 이루고 수목원을 만들어 생명의 저수지를 조성하고 있는 조상호(68) 나남출판·나남수목원 회장을 만나러 가면서 든 단상이다.


“출판 일을 하면서 만난 여러 인연들로 인해 일업일생을 벗어나 외도를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요. 유혹을 떨치고 출판언론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숨 쉴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나무 심는 일이었어요. 내가 가는 길에 희망을 걸며 중심을 잡으려고 묘목밭을 일구는 노동을 자청해 자신을 학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경기 포천군 신북면 왕방산 자락에 자리잡은 나남수목원에서 만난 조 회장은 낡은 청바지에 흙 묻은 등산화 차림이었다. 월·화·수요일은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나남출판에 나가 업무를 보고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수목원으로 출근해 나무를 가꾼다고 했다. 요즘은 애지중지 키우는 반송 3,000그루의 가지와 새순을 자르다 보면 하루해가 야속하게 짧기만 하다. 수목원 중턱에 위치한 책박물관에서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오르는 도중에 조 회장의 나무 해설이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나무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각각의 스토리를 소개했다.

“손기정 선생이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기념품으로 받은 게 바로 이 참나무 묘목이에요. 지금도 선생의 모교인 양정고 옛 교정에 가면 그 묘목이 자란 나무가 우뚝 서 있습니다. 나중에 대왕이라는 업체가 묘목을 수입해서 대왕참나무라고 부르는데 손기정참나무로 바꿔 불렀으면 해요. 이건 회화나무인데 1980년대에 방문했던 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봤던 나무예요. 이 길을 따라 쭉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저마다 내 개인적 경험과 연관된 스토리가 있습니다. 수목원을 가꾸는 일은 나의 스토리텔링이 되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과정이었죠.”

나남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부터지만 조 회장이 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외환위기 때 파주 교하에 도서창고를 짓는 과정에서 은행이 대출 조건으로 부실채권인 파주 적성의 임야 약 5만㎡(1만5,000평)를 떠안기면서부터다. 땅을 그냥 둘 수 없어 자작나무, 느티나무, 산딸나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었지만 죽기를 반복했다.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무 지식이 모자라서였다.

“죽은 나무들에게 너무 미안했죠. 그때부터 나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광릉수목원 옆에 집을 지어 이사했는데 집에 딸린 밭에 여러 종류의 묘목을 심었어요. 시험재배를 한 셈이죠. 훌륭한 나무 공부방이 됐습니다. 이후에 충남 태안에도 임야를 구해 나무를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는데 그때 심었던 산벚나무·산수유나무·소나무들이 훤칠한 청년이 돼 지금 수목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날이 가물 때는 출판사 일이 아무리 바빠도 현장에 나가 나무에 물을 주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논밭에 물을 대는 농부의 마음처럼 나무를 가꾸는 일 또한 생명에 대한 애착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진촬영을 위해 찾은 곳은 반송 3,000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수목원의 맨 위쪽에 있어 볕이 잘 드는 이곳은 조 회장이 가장 정성을 들이는 공간이다. 직접 반송을 심고 세 칸짜리 한옥 정자도 지었다. 정자에 걸터앉아 부채꼴로 심어져 있는 반송들을 바라보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봄날 3,000그루의 반송들이 고함처럼 내지른 새순들의 열병식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출판일을 하면서 머리가 복잡하다가도 여기 와서 반송을 돌보다 보면 말 그대로 무념무상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내가 조금 다듬어주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무를 닮고 싶고 나무처럼 늙고 싶습니다.”


본인 소유의 땅뙈기 한 평 없고 지상의 방 한 칸 마련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도회지 소시민들에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식목일에 나무 심는 일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각박한 세상이다. 66만㎡(22만평) 임야에 수목원을 짓고 나무를 가꾸는 조 회장의 취미(?)가 호사로 비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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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저절로 자라는 것 같지만 손이 많이 갑니다. 반송은 키가 작고 더디 자라지만 제때 가지를 쳐주고 새순들을 다듬어줘야 비로소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외롭고 고된 일이지요. 돈과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나무라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생겨서 여기까지 왔네요.”



나남수목원 부지는 고속도로 나들목을 나와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다. 파주 적성의 임야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나면서 나무들이 잘려나가는 것을 경험한 조 회장이 개발의 손끝이 닿지 않을 만한 첩첩산중을 찾았기 때문이다. 수목원은 아직 정식 개장을 하지 않은 상태다. 조성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형태가 잡혔지만 진입 도로나 주차장과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손볼 곳이 많지만 일반인들도 찾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현재 진행 중인 진입도로 공사는 이르면 다음달 마무리되고 주차장 공사도 한창이다. 지난해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과 경기남부권에서 접근성도 좋아졌다.

수목원 중턱에 자리잡은 3층 규모의 책박물관은 조 회장이 40년 가까이 땀 흘려 만든 책들을 담고 출판을 매개로 만난 선후배들을 위한 아카이브 공간으로 마련했다. 아카이브에는 언론인이자 소설가인 김동익 전 용인송담대 총장과 문학평론가인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1, 2호로 들어왔다. 지난해 5월 개관했지만 서가 대부분이 비어 있다. 앞으로 아카이브에 추가로 들어올 학자·저자들의 책들이 빈 공간을 채워나갈 터다.

“학자 한 분이 돌아가시는 것은 큰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어요. 책박물관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지성의 힘과 사상의 원천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1979년 설립된 나남출판은 지금까지 3,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나남신서’로 대표되는 사회과학 서적이 주종을 이룬다. 사회과학서 중에서도 언론학 분야는 나남의 도서목록이 가장 풍성하다. 학술서적 위주이다 보니 판매량이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1년에 고작 100~200권 팔리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린다’를 모토로 시쳇말로 ‘돈 안 되는’ 사회과학서 출간을 고집스레 이어왔다. 물론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가 가끔 나온다. 오생근 교수가 번역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1994년 출간 후 지금까지 8만권 이상 팔렸다. 사회과학서가 주특기지만 문학 작품들도 꾸준히 발간했다. 특히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는 나남의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박경리 선생의 책을 팔아 번 돈이 사회과학서를 낼 수 있는 원천이 됐습니다. 많은 사회과학자가 박 선생께 빚을 진 셈이죠. 직원들에게 가끔 ‘수금 좀 하자’고 말하고는 합니다. 팔릴 만한 책을 한번 기획해보자는 얘기죠. 만든 책마다 잘 팔리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가끔씩 베스트셀러가 나와줘야 학술서적을 만들 힘이 생기죠.”



수목원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 다시 수목원으로 돌아와 조 회장과 함께 반송의 새순을 자르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네댓 개의 순들 중에서 유별나게 큰 가운데 순을 잘라주는 일이다. 큰 순을 잘라내 다른 순들에게 양분이 골고루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래로 뻗은 가지는 과감하게 잘라낸다. 그래야 삼각형 형태로 반듯한 수형(樹形)이 만들어진다. 조 회장은 3,000그루의 순 지르기를 거의 혼자서 한다고 했다.

“2011년 홍수 때 산사태로 애써 가꾼 나무들이 다 쓸려 내려갔어요. 그러고 나서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그루씩 심은 게 지금 이 나무들입니다. 1년 내내 순을 잘라 주는 게 내 일이죠. 그러니 어찌 자식같이 소중하지 않겠어요. 수목원을 찾은 지인들이 이 반송을 보며 한 그루씩 달라고 합니다. 수목장을 해서 이곳에 묻히고 싶다는 거죠. 우리 사회에 기여한 학자나 문인·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영면에 들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아들딸과 손주들이 찾아와 소나무를 함께 다듬으며 선친과 조부모를 추억한다면 귀천한 분들도 흐뭇해할 겁니다. 그게 내 작은 꿈이죠.”
/포천=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50년 전남 장흥 △고려대 법학과, 한양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 △계간 ‘사회비평’ 발행인 △한국언론학회 이사 △연세대·고려대·서강대 언론대학원 강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 △나남 대표이사 △지훈상 상임운영위원 △나남수목원 이사장 △한국방송광고대상 공로상·한국출판학회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저서 ‘한국언론과 출판저널리즘’ ‘언론 의병장의 꿈 :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한 나남출판 30년’ ‘나무 심는 마음’

성행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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