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 인사이드]"미국이 돌아왔다" 시리아 내전, '다시 미·러 대리전'

WSJ “美 해군 구축함 시리아 해안으로 이동”

비용 문제로 미군 철수 시사했던 트럼프

러·이란 세력확대에 시리아 내전 개입 선회

'반러 공조' 佛·英도 美 도울 가능성 제기

러와 물밑공조 이스라엘도 美쪽으로 기울어

국제사회, '시리아 내전 새판짜기' 돌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내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많은 군사 옵션이 있다”며 시리아를 겨냥한 군사 행동을 시사했다.   /워싱턴DC=EPA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내각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많은 군사 옵션이 있다”며 시리아를 겨냥한 군사 행동을 시사했다. /워싱턴DC=EPA연합뉴스



시리아 내전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7년 내전 종식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던 시리아 문제는 다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유엔 합의 없이도 독자적 행동을 하겠다며 군사행동을 위협하자 러시아는 ‘중대한 파장’을 예고하는 등 이미 양국은 말 폭탄을 주고받았다. ‘반러시아 전선’을 꾸리고 있는 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가 미국과 공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숙적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밀착해온 이스라엘이 발 빠르게 미국 쪽으로 기우는 등 열강들의 새로운 합종연횡이 시작된 모습이다.



◇시리아에 미국이 돌아왔다=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이 9일(현지시간) 시리아 해안을 향해 이동 중이라며 시리아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각료회의에서 최근 시리아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공격과 관련해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에게는 많은 군사 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목도한 잔혹 행위를 미국의 힘으로 멈출 수 있다”며 “앞으로 24~48시간 내에 중대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배후설에 대해 “(만약 사실이라면) 모든 사람이 대가를 치를 것이며 그(푸틴 대통령)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시리아 정부군으로 의심되는 세력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자 시리아 공군비행장으로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한 바 있다. 신경계 가스무기 사용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 역시 배후로 알아사드 정부군이 특정돼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행동에 재차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내전 개입 발언은 그동안의 ‘미군 철수’ 의사를 뒤집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 “중동 문제로 지금까지 7조 달러를 낭비했다”며 “조만간 시리아에서 철수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시리아 문제를 처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까지 미국은 줄곧 ‘중동 개입’ 외교정책을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의지는 이윤을 중시하는 사업가적 기질에서 기인한 바 크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원하는 이유는 비용 문제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대신 반군을 지지했기 때문에 내전이 끝나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전후 처리비용을 더 이상 지출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이란 견제해라”...전후 처리 비용을 웃도는 중동 이익=하지만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군이 또 다시 화학 공격을 감행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에 개입해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톰 코튼 상원의원은 “아사드가 이란·러시아 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며 “세 나라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독재정권의 인권 유린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비판이다.


미국 정치권의 우려는 단순히 ‘민주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미국이 빠지게 되면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이 확장된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동안 알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하며 시리아 곳곳에 군사 기지를 건설해 놨다. 이란도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부가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미군의 철수를 반대해왔다. 미국이 빠진 중동이 ‘적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지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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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알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하며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러시아는 미국의 엄포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시리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안보리 회의에서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주재 러 대사는 “날조된 구실로 군사력을 사용한다면 중대한 파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영국 이중스파이 암살 논란으로 공조를 강화하는 미국·프랑스·영국·독일이 “국제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고 싸잡아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 회담을 하며 사태의 추이를 예민하게 지켜보는 모습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EPA연합뉴스


◇유럽국가까지 시리아 참전할까=미국을 중심으로 서방국가가 시리아 사태에 추가 개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고조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 대사는 “정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해 ‘유엔 안보리의 동의가 없더라도 독자적인 행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리처드 고원 유럽외교협회(ECFR) 연구원은 “ 러시아가 (미국의 진상조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미국은 군사행동을 정당화할 것”이라며 “(시리아 사태에서) 유엔이 붕괴하면 프랑스도 공습을 정당화하기 쉬워진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외에도 영국·독일이 미국을 지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영국 내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 사건 이후 유럽국가들의 ‘반(反) 러시아 연대’가 공고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스파이 암살 사건이 발생한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러시아 외교관을 자국에서 추방했으며, 트럼프 행정부도 이에 보조를 맞췄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국가의 공조에 놀랐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삐걱거렸던 서방의 관계는 ‘반 러시아 연대’로 공고화하는 모습이다.

◇시리아 새 판 짜는 주변국=시리아 내전에서 발을 빼려던 미국이 화학무기 공격 이후 다시 깊숙이 개입할 태세를 보이며 미국과 러시아 간 대리전 재점화 양상으로 치닫자 주변국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군 철수’에 발맞춰 행동해왔으니 미국의 복귀와 함께 새 판을 짜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시리아 내전 복귀에 맞춰 발 빠른 공조에 나섰다. 미 NBC방송은 이날 새벽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습한 국가가 이스라엘이며 미국에 공격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러시아에는 공격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추정돼 지금까지 적대국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물밑공조를 해온 이스라엘이 다시 동맹국인 미국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영국 가디언은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시리아 내전을 이란의 확장정책을 막기 위한 전쟁터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에 일깨웠다”고 전했다.

시리아 내전 전후 처리를 위해 러시아·이란과 공조해온 터키도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야사르 야키스 전 터키 외무장관은 “에르도안 대통령부터 화학무기 공격이 알아사드 정권의 소행이라고 지적했다”며 “러시아·이란과 거리를 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가까이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터키는 미국이 쿠르드족 세력 확장을 억제한다는 약속에 동의한다면 언제든 러시아·이란과의 공조를 깰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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