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한국GM 사태의 교훈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혁신역량 잃고 생산기지 전락

대규모 구조조정 위기 내몰려

경영환경 악화속 국내기업 표류

산학연관 협력 대응 모색해야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외환위기 당시 국내 기업의 해외 매각을 놓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대규모 할인판매(firefall sale)가 이뤄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외국 자본은 삼성자동차·대우자동차·쌍용자동차와 함께 100백개가 넘는 부품업체의 지분을 인수했다. 대우차는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포드가 실사를 마치고 인수를 포기하자 제너럴모터스(GM)에 당초 제시한 가격의 3분의1에 불과한 값에 매각됐다. 인수된 국내 자동차 업체 중 쌍용차와 일부 부품업체는 경영 부실화로 재매각되는 고통을 겪었다. 최근에는 GM이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군산 공장을 폐쇄하고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테니 한국의 이해관계자들도 상응한 투자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GM 같은 다국적기업들은 인수기업의 핵심자산을 송두리째 가져간 후 효용성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매각하거나 축소 조정하는 것이 상례다. 한국GM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이나 신차종 개발과 출시가 끝난 지 오래다. 이처럼 혁신역량을 잃고 단순 조립생산 기지로 전락한 한국GM은 원가절감을 위한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풍전등화의 처지다.


GM이 파산신청으로 공급차질을 빚게 되자 GM대우가 GM 승용차 판매물량의 3분의1을 공급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은 GM대우의 앞날이 창창할 것으로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GM이 글로벌 네트워크 재편과정에서 GM대우의 공급기지 역할을 축소하고 회사명에서도 대우를 삭제하면서 중앙통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또 GM이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전략을 변경하고 원가상승 등에 따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해외법인을 매각하거나 폐쇄해나가면서 한국GM은 계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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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국내 산업계에서는 고비용 저효율이 회자되고 있다. GM도 한국GM의 지속적인 인건비 상승을 우려하면서 호주 사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한 바 있다. 이미 국내외 기업들은 국내 제조업의 원가가 상승하고 효율성이 떨어지자 하나둘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주요국 정부는 기업 인수합병(M&A)이 경쟁구조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평가하고 기술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자국 기업의 해외매각을 저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규모 금융·조세 혜택을 제공하면서 해외에 투자, 진출한 자국 기업의 회귀를 촉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각국의 세금제도를 평가해 조세 비협조국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세원 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이 모두 자국의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해 일자리 창출과 혁신역량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국내 기업뿐 아니라 외국인 투자기업도 양호한 입지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기업들은 원가절감과 핵심역량 강화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면서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이해관계자들의 망각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중국은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 주력산업을 위협하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막대한 R&D 투자와 기업지원 하부구조를 구축해 신산업을 육성함으로써 경쟁의 장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GM 사태는 원가상승, 혁신역량 상실, 소통부재 속의 갈등과 대립 및 경쟁구조 변화를 간과한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잘 보여준다. 위기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들이 중지를 모으지 않고 동상이몽에 빠질 경우 사태는 더 꼬일 수 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산학연관이 힘을 합해 국내 주력산업의 구조개편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기업가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우리 기업이 직면한 경쟁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외국인 투자환경도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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