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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남북협상, 北변화 유도 가능성 본 회담"

내일 '남북협상 70주년' 학술대회

이신철 교수 남북관계 전망 발표

이신철 교수이신철 교수



지난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전 진행된 남북협상에 대해 “대한민국의 역량에 따라 북한 혁명 노선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회담”이라고 평가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70년 전 이뤄진 남북협상의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한 연구라 주목된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남북협상 70주년’을 기념해 17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발표문 ‘북한에서 보는 남북협상과 남북 관계 개선 전망’을 공개한다.

발표문에 따르면 1948년 2월16일 미소 양군 철수와 총선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에 의견 일치를 본 남한의 우파 민족주의자 김구와 김규식은 북측에 남북협상을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 당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일성은 이 제안에 곧바로 응하지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김구를 ‘미 제국주의의 주구’이자 ‘민족반역자’로 보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구와 김규식이 중도 세력을 규합해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나서면서 김일성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구김구


김규식김규식


우여곡절 끝에 김구와 김규식은 1948년 4월26일과 4월30일 평양에서 김일성과 당시 김두봉 북조선노동당 당수와 함께 ‘4자 회담’을 갖고 △독재정치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할 것 △사유재산 제도를 승인하는 국가를 세울 것 △총선거로 통일중앙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 제안했다. 남북협상은 그해 4월19일부터 4월30일 사이에 이뤄진 4자 회담은 물론 조선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남북은 이 같은 회담 과정을 거쳐 ‘외국 군대 철수 후 총선에 따른 통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합의안을 채택했다. 이 교수는 “1948년 남북협상의 성과는 비록 남북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빛이 바랬지만 그 이후에도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자들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며 “대화에 미온적이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고 합의안 채택까지 성공한 것은 확고해 보이는 북한의 혁명 전략이 남한의 역량과 노력에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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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2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지도자를 향한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경제 협상에서의 우위 선점과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곧 열리는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동북아 평화질서의 선도자가 될 기회”라고 강조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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