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지배구조 수술만 있고...방패는 없는 한국기업

[지배구조 개혁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 순환출자 해소만 집중

차등의결권·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장치는 외면




‘갈라파고스 규제’.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관련법과 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 지배구조 개혁은 순환출자 고리 해소, 지주사 전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외견상 변화는 크다.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는 이 정부 출범 당시 93개에서 현재 12개로 줄었다. 반면 지주사는 193개(2017년 3·4분기 기준)로 1년 전보다 31개 늘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고립된 섬에 가깝다. 안정적 성장을 위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 보장, 지배구조의 자율선택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큰 축으로 하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고 있어서다.


고용·투자 대신 ‘정답이 없다’는 지배구조 개편에 수조원씩 쏟아부은 기업을 기다리는 것은 한층 촘촘해진 거미줄 규제다. 지주사로 바꾸면 자회사에 공동 투자하는 길이 막힌다. 벤처가 대기업 계열사가 되면 일감 몰아주기, 부당지원 등의 규제도 혹처럼 붙는다. 그 결과 기업이 알아서 지분 인수를 꺼린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이 비계열사와 결합한 건수만 봐도 지난 2015년 93건에서 지난해 67건으로 줄어 창업생태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심해지는 일자리 기근, 4차 산업혁명으로 미래에 매진해야 할 기업 현실을 고려하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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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방향을 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 정부가 미는 다중대표소송(모회사 지분을 0.01%만 보유하면 자회사 임원에게 소송 권리 부여)만 해도 일본만 법제화했다. 조건도 100% 모자회사로 국한돼 우리와 달리 엄격하다. 집중투표제(이사 선임 시 의결권 몰아주기)를 의무화한 곳은 러시아·멕시코·칠레 등 3개국뿐이다. 미국은 1940년대, 일본은 1970년대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주 간 파벌싸움의 도구로 전락했다며 버린 제도를 뒤늦게 강제하려는 것이다.

기업의 대문은 활짝 열렸지만 방패가 없는 게 문제다. 대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차등의결권, 기존 주주에게 싼 가격의 신주배정 권리를 부여한 포이즌필 등을 우리는 도입하지 않았다. 엘리엇이 잊을 만하면 출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포스코 등 대표기업의 외국인 지분은 이미 50% 안팎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기업 경영권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라며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도록 우리 기업에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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