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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60주년展 '군상-통일무'] 먹이 스며든 자리, 먹먹한 춤이 넘실대네

"내 그림의 제목은 모두 평화"

통일 만끽하는 남북舞人 표현

미공개작 40점 처음으로 공개

감옥서 빚은 종이죽 조각도 전시

이응노 ‘군상’ 1987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이응노 ‘군상’ 1987년작 /사진제공=가나문화재단



“음악에 맞추는 춤은 멋이 나고, 음악에 맞추지 않는 춤은 웃음이 나고, 음악도 없이 추는 춤은 어쩐지 눈물이 난다. 여럿이 추는 춤은 신명이 에워싸고, 둘이서 추는 춤은 사랑이 에워싸고, 혼자서 추는 춤은 우주가 에워싼다.”

시인 김소연이 쓴 ‘한 글자 사전’ 중 ‘춤’ 편이다. 그의 시(詩)처럼 멋과 웃음과 눈물이 나는 춤추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이응노(1904~1989)의 ‘군상’이다. 생전의 작가는 춤추는 사람들을 그린 자신의 작품을 두고 “통일된 광장에서 환희의 춤을 추는 남북의 사람들”이라며 ‘통일무(統一舞)’를 강조했다. 1988년의 한 인터뷰에서는 “내 그림의 제목은 모두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며 “모두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민중의 삶이 곧 평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1958년 말 유럽으로 가 프랑스에 정착한 고암 이응노의 도불 60주년 기념을 겸한 전시 ‘군상-통일무’가 1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가나문화재단이 기획한 전시로 평면 및 조각 60여 점이 전관을 채웠다. 이 중 40여 점이 미공개 작으로 이번에 첫선을 보였다.

이응노 개인전 ‘군상-통일무’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이응노 개인전 ‘군상-통일무’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1922년 당시 화단의 최고봉이던 해강 김규진에게서 문인화와 서예를 배웠다. 특히 대나무 그림에 빼어나 스승으로부터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았다. 일필휘지의 먹선으로 그려낸 나부끼는 댓잎에서 덩실거리며 춤추는 사람의 형상이 탄생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이응노는 1935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근대미술을 공부한 후 일본화나 서양화와 차별되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모색했다. 간략하게 그린 반추상 풍속 인물화에 집중하던 중, 1957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출품한 그림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것에 자신감을 얻어 해외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프랑스로 가서는 당대 유행하던 앵포르멜(비정형 추상미술) 운동에 자극 받아 서예의 추상성을 구현하기 시작한다. 군상·군무의 토대가 되는 수묵인물화가 태동할 무렵인 1967년, 이응노는 동베를린공작단 사건인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감옥살이의 가장 큰 괴로움이 그림 그리지 못하는 일이라 했던 작가는 간장을 찍어 화장지에 데생을 시작했다. 끼니마다 모은 밥알을 신문지에 개어 조각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밥풀 종이죽 조각 2점이 선보였다. 눈물과 땀으로 빚은 작품 속 사람들은 거나하게 취한 듯 뒤엉켜 춤춘다. 먹 묻힌 붓에 힘을 주었다 빼기를 반복해 그린 풍물패는 사람도 춤추고 신들린 붓을 따라 상모 끈도 너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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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을 전후해 수감중이던 이응노가 밥풀과 신문지로 만든 ‘군상’ /조상인기자1968년을 전후해 수감중이던 이응노가 밥풀과 신문지로 만든 ‘군상’ /조상인기자


요즘으로 치자면 ‘블랙리스트’ 작가였던 이응노는 조국 분단과 정치적 대립의 희생양이 됐다. 예술은 이념과 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응노에게 프랑스 측은 적극적으로 귀화를 권했고, 그렇게 품에 안은 작가를 자국의 대표급으로 평가하며 존중했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는 두 건의 이응노 전시가 열렸다. 하나는 파리시립 세르누시미술관이 “20세기 서구와 극동아시아의 문화적 교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기념하는 전시”라며 기획한 대규모 개인전이었다. 또 하나는 퐁피두센터의 기증작 전시였는데, 아주 특별하지 않으면 작품 기증을 받지 않는 퐁피두의 관행으로 보면 무척 뜻깊은 자리였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유럽을 풍미한 이응노와 뉴욕으로 간 수화 김환기를 두고 “좌(左) 고암, 우(右) 수화”라고 평했다. 온통 춤으로 넘실대는 이번 전시는 다음달 7일까지 열린다. 가나아트센터는 내년 고암 타계 30주기를 맞아 대규모 전시를 준비 중이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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