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사장단 초청 오찬 간담회는 정치·경제 등 국내 문제에 대한 논의 없이 시종일관 대북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청와대에서 (언론계의) 사장단을 초청한 것은 18년 전인 2000년 이후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청와대는 한반도가 ‘역사의 문’ 앞에 선 중차대한 시점이어서 언론계의 날카로운 비판과 제언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판단,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간담회는 1시간30여분간 진행됐다. 이 중 1시간은 언론사 대표들의 제언과 질의에 할애됐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특히 이날 간담회에서는 중국의 역할에 대한 제언과 질의가 많았다. 지난 3월 극비리에 진행된 북중 정상회담 후 한반도 북핵 대화판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확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중 통상전쟁이 세계 경제를 출렁이게 하는 등 이른바 주요2개국(G2)으로 불리는 두 강대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된 점도 중국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이종환 서울경제신문 대표이사 부회장은 “현재의 안보정세에 대해 중국의 전후질서 재편 요구를 미국이 견제하면서 미중 간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큰 틀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이 부회장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중국이 한국과 한반도 문제 등에서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우리가 복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참석한 한 언론사 대표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적 전략인 ‘담담타타(상대방이 강하면 대화로 부드럽게 풀고 약하면 때려서 강하게 푸는 것)’를 거론하기도 했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남북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일괄 타결하려는 반면 북한은 단계적으로 풀려고 해 비핵화 해법을 두고 간극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간극을 좁히지 못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북미 간 비핵화 해법의 간극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며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자문단과도 수시로 비핵화 해법과 북한 설득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협회장인 양승동 KBS 사장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는 보편적 가치”라며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현대사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 및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데 이정표가 될 것으로 국민들이 기대한다”고 문 대통령에게 전했다. 신문협회장인 이병규 문화일보 대표도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며 “완전한 비핵화의 출발점이 되고 평화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성부 연합뉴스 사장은 건배사에서 “우리나라는 위풍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며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 실현,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분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기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진작에 이번과 같은 간담회를 열었어야 했는데 바쁜 일정으로 개최가 늦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에 대해 참석한 사장단 사이에서는 문 대통령에게 향후 데스크급 언론사 간부들과도 만나 의견을 들으라는 취지의 요청이 나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저의 베를린 선언을 두고 꿈 같은 얘기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꿈이 지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대담한 상상력과 전략이 판을 바꾸고 오늘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찬 행사에는 청와대의 임종석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배석했다. 정부 측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자리를 함께했다.
오찬 간담회 후 본관 로비에서는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참석자가 요즘은 사진 찍을 때 ‘김치’라고 하지 않고 ‘영미(동계올림픽 컬링 대표선수의 이름)’라고 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해외출장 중 사진을 찍을 때 영미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