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금속피로

영국이 자존심을 걸고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 ‘코멧(Comet)’이 1953년 5월, 이듬해 1월 두 차례나 연거푸 공중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가 직접 나서 “비용과 인원에 개의치 말고 사고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라”고 왕립왕공협회에 지시했다. 즉각 거국적인 조사가 진행됐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이 동원됐다. 거대한 수조(물탱크)를 만들어 그 속에 사고기와 유사한 기체를 가라앉히고 대대적인 재연 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가 1년 만에 나왔다. 고속회전하는 기계장치 등에서 금속이 지속적인 진동에 의해 물러지며 균열을 일으키는 금속피로(metal fatigue)가 사고 원인이라는 내용이었다. 개발자들이 동체 수명을 비행횟수 ‘수 만 회’로 생각하고 설계했지만 실제로는 수천 회에 불과해 운항 횟수가 많아질수록 기체에 금속피로가 급격히 쌓였다는 것이다.




창문 모양도 문제였다. 그 시절 제트여객기 창문은 바깥 경치를 보기 편하게 ‘ㅁ’자 형태로 큼지막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팽창·수축 압력으로 모서리 부분이 쉽게 마모되고 그만큼 균열에 취약하다. 금속피로로 약해지고 창문의 미세한 금이 차츰 벌어지면서 항공기가 상공에서 찢어져버린 것이다. 코멧 사고는 여객기 창문이 원형이나 타원형, 혹은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된 형태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사고는 안타깝지만 그나마 위안거리다.


2000년대 최악의 사고로 알려진 중화항공 611편의 공중분해도 원인은 같았다. 2002년 5월25일 이 여객기는 대만 공항을 이륙한 지 20여분 만에 여러 조각으로 공중에서 분해됐다. 당시 중국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어 한때 중국 격추설까지 나돌았지만 조사 결과는 달랐다. 부실하게 수리된 부분에 금속피로가 누적되면서 기체에 균열이 생겨 큰 사고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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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아픔을 겪었는데도 비슷한 사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 엔진 폭발 사고도 금속피로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조사해보니 금속피로 탓에 엔진의 팬 블레이드(날) 하나가 분리돼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금속피로 사고의 대부분은 부품 교체를 소홀히 하는 등의 방심이 화를 키웠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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