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찰팀 24/7] 28차례 신고전화에도 묵묵부답…"합법" 뒤에 숨어버린 空권력

2016년 노원구 인덕마을 용역폭력 묵인

지구대 신고 안 받고 기동대 지켜보기만

'합법 집행' 명분 탓에 소극적 대응 잦아

인권위 "충돌에도 모르쇠 일관 직무유기"

지난 2016년 4월26일 서울 노원구 인덕마을에서 용역직원과 철거 반대 주민 간 충돌이 빚어져 구급대원이 부상자를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인덕마을 이주대책위지난 2016년 4월26일 서울 노원구 인덕마을에서 용역직원과 철거 반대 주민 간 충돌이 빚어져 구급대원이 부상자를 살피고 있다. /사진제공=인덕마을 이주대책위



“사람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이가 부러졌어요. 경찰을 수십 번 불렀는데 오지 않았죠.”

지난 2016년 4월26일 오전8시20분 서울 노원구 월곡지구대로 다급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용역직원들이 충돌한 노원구 인덕마을 상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28통의 전화가 이어졌지만 경찰관은 “나중에 폭행죄로 형사 고소하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당시 충돌로 손목·갈비뼈 등이 부러지는 주민들이 속출했다. 상가 바깥에는 70여명의 경찰 기동대가 있었지만 이들은 폭력사태에 개입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년간 당시 사건을 조사한 끝에 지난달 29일 사건을 담당했던 전임 노원경찰서장을 ‘경고’ 조치하도록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요즘도 강제철거가 집행되는 행정대집행 현장에서는 용역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철거민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경찰을 손쉽게 볼 수 있다. 공권력이 폭력을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합법적인 법 집행을 경찰이 막았다는 비난을 살 수 있어서다.


현행 경비업법에 따르면 사설 경비업체는 집단쟁의 장소나 법원 행정대집행 등 경비를 필요로 하는 장소에서 도난·화재나 혼잡에 따른 위험을 막는 업무를 맡을 수 있다. 지방경찰청장 허가를 받은 경비업체는 경비원 배치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원을 신고해야 한다. 서장은 경비원들 범죄전력 등을 조회한 뒤 적격 여부를 결정한다. 또 경찰서장은 경비원이 현장에서 위력이나 흉기를 사용하거나 폭력사태를 일으켰을 때 이를 중지해야 할 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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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사태 발생 시 경찰의 개입 의무도 명시돼 있지만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행정대집행이 법원에 의해 합법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민사집행법에도 ‘채권자는 채무자의 저항이 있을 때 경찰이나 국군의 원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경찰이 채권자의 재산 회수를 우선적으로 돕도록 규정해 놓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합법적으로 소유권을 인정받은 건물에 대한 재산권 행사를 방해하면 비난을 받고 심한 경우 역고소를 당하기도 한다”며 “민사사건은 가급적 경비업체에서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현행법에 따라 경찰이 몸을 사리는 사이 철거현장에서의 폭력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다. 실제 인덕마을 철거현장에서는 당초 신고된 경비용역과 집행관 외에 폭력 전과 등이 있는 불법 용역 90여명이 추가로 배치됐다. 하지만 경찰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현장 신고를 받은 지구대 경찰들 역시 “현장에 이미 경찰들이 나가 있다”며 신고에 출동하지 않았다. 현장에 배치된 기동대 70여명은 재건축 대상 건물에서 5m가량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을 뿐이다. 노원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건물 밖에 있어서 (안에서 폭력행위가 일어나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인권위 조사관은 “충분히 충돌 가능성이 예고됐는데도 건물 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관 한 명 보내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행정대집행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경찰의 딜레마도 이해하지만 철거현장에서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불법 용역이 개입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까지 경찰이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서울시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 소속의 한 변호사는 “최소한 현장에 온 직원들의 신원만 제때 파악하고 관리해도 이들이 함부로 폭력을 쓰지 못한다”며 “경찰이 범죄경력 조회만 미리 철저히 해도 폭행 전과자가 경비업무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규철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경찰이 철거현장에 개입할 때 구체적인 방법과 인력배치 기준 등을 매뉴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 철거가 집행됐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588 철거집행 현장은 관할경찰서의 비교적 세밀한 관리 감독으로 유혈사태를 줄인 사례로 꼽힌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집행 전 미리 건네받은 경비업체 소속 경비원들의 범죄경력을 모두 조회한 뒤 다음날 현장에 직접 나가 경비원들의 돌출행동을 막았다. 경찰 관계자는 “정부에 등록된 경비업체 경비원들은 자신들이 업무를 하러 왔다고 생각해서인지 불필요한 폭력행위를 자제한다”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경비원을 현장에서 배제하고 나면 비교적 정돈된 분위기에서 행정대집행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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