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3개월 단위로 공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개방식은 매수·매도 총액 방안이 거론되는 가운데 순매수 방식을 관철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원하는 방향보다는 좀 더 불리해진 셈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만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에 관해 협의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외환시장 개입정보 공개는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 거시경제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한국 경제와 외환·금융시장 여건을 감안할 때 부작용 우려는 크지 않다”고 밝혔다.
외환당국에 따르면 공개주기는 3개월 단위로 3개월의 시차를 두고 밝히는 방안이 유력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공동선언문에는 개입내역을 3개월 이내 시차를 두고 분기 단위로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한다는 합의가 포함돼 있다.
공개주기는 TPP를 따를 확률이 높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TPP에서 6개월 단위로 공개하기로 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은 버락 오바마 정부 때 예외를 인정받은 것으로 지금과 통상환경이 다르다”며 “우리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미국이 (6개월을) 인정해줄 가능성은 적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무조건 공개주기가 길다고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3개월 단위 공개에 무게를 둔 것이다.
美, 6개월 인정해줄 가능성 적어
정부, TPP 방식 따를 확률 높아
“공개 범위라도 순매수로” 지적
오늘 므누신 美재무와 최종 조율
공개방식도 TPP를 준용해 매수·매도 총액을 공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우리 정부가 TPP를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위한 모델로 삼고 있다는 해석 때문이다. 베트남을 비롯한 3개국은 공개방식도 순매수로 예외를 인정받았지만 현 상황에서 이를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베트남과 똑같은 대접을 해달라고 하면 미국이 받아들이겠느냐”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는 지금의 미국 눈높이가 예전과 같다고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매수·매도 총액 공개 시 투기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 정부의 고심이 깊다. 매수 개입이 100, 매도가 100인 경우 순매수로 공개하면 0이 된다. 그만큼 정부의 움직임을 외부에서 파악하기가 어렵다. 전문가들도 총액 공개방식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단 공개를 하면 앞으로 공개범위는 더 넓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며 “이미 6개월 주기, 6개월 시차 공개 방침에서 한 발짝 물러선 만큼 공개범위만이라도 순매수액을 밝히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개방식을 두고 막판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순매수 또는 매수·매도 총액 등의 방식은 여전히 보고 있다”며 “협의가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IMF와는 충분히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라가르드 총재를 만난 김 경제부총리는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른 나라의 사례, 우리 외환시장 및 경제구조,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종 결정은 21일 이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총리는 이날 스티브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조율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공개한다고 해도 시장개입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금융시장 불안정이 있거나 쏠림이 있으면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을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인정하는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세종=김영필·빈난새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