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다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통신은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며 결정서에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결정서는 이어 “핵시험 중지를 투명성있게 담보하기 위하여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이다”라고도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개발의 전 공정이 과학적으로, 순차적으로 다 진행되었고 운반 타격 수단들의 개발사업 역시 과학적으로 진행되어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된 조건에서 이제는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디테일(detail)의 악마’를 가장 큰 과제로 꼽고 있어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이 ‘디테일’을 언급한 것은 비핵화 원칙보다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이 여전히 난제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했던 약 9년 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했던 북측은 지난 2009년 초 평양을 방문했던 미국 측 인사들에게 비공식적으로 3단계 비핵화에 대한 요구조건들을 내세웠다. 이 조건들에는 ‘디테일의 악마’로 우려되는 사항들이 적지 않았다. 조성렬 국가전략연구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북한이 비핵화 1단계(플루토늄 생산능력 불능화 완료 등)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100만톤 상당의 중유 제공 완료 등이었다. 2단계(핵시설 해체 및 실험 유예 등) 비핵화의 경우 주한미군기지 핵사찰 및 경수로 2기 제공이 주요 요구조건으로 내걸렸다. 3단계(핵 포기)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자국에 대한 미국 측의 적대시 정책 종료와 한미동맹 종료,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거를 반대급부로 요구했다.
이 중 북측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미국에 요구할 여지는 있다. 혹은 이보다는 다소 강도를 낮춰 한반도 일대에 전개된 미군 전략자산을 축소, 철수시키거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북측이 주장할 가능성 역시 적지 않다.
이처럼 무리한 조건을 내걸지 않더라도 비핵화의 시간표 등을 놓고 북측이 까다롭게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북측은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비핵화 이행의 시간표를 최장 10년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이 같은 난제를 풀려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비핵화 원칙을 합의한 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첫 단계로 미국의 의도대로 1년 이내에 북한의 전면적인 핵사찰 수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를 통해 순차적이되 속전속결로 핵 봉인 및 폐기 수순을 밟는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