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기술진보, 민주주의의 축복인가 저주인가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서경펠로

직접민주정치 훌륭한 수단이지만

특정 집단 여론조작 가능성 상존

부작용 막을 ICT 규제 강화하고

정치·언론·시민단체 자정 노력을

채수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서울에 갔다가 KTX를 타고 대전에 내려오다 보면 대전역에서 내가 사는 집에 가는 마지막 버스 시간을 스마트폰에서 알려준다. 그 친절에 고마워하기보다 도대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아는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구글이 내 생활 패턴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것일까. 민간 인터넷 회사만 이런 능력을 갖고 있을까. 공안·정보기관의 큰형님(Big Brother)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않을까.

지구상의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됨으로써 정치가 달라지고 있다. 이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은 여론의 형성과 전달을 도와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도 있지만 여론조작을 통해 민주주의로 위장된 전제(專制)주의를 키울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언론자유가 제한된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로 다시 선출돼 장기집권의 길로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인터넷 여론조작 논란이 있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정치를 하면서 언론의 견제기능을 약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정권 정보기관의 인터넷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이 법의 심판을 받는가 했더니 현 집권세력의 인터넷 댓글을 통한 불법적 여론조작 의혹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정치가 과연 진보하고 있는가.


사회의 유지와 작동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게 정치다. 역사상 어디서나 가장 많이 채택된 정치 형태는 왕과 같은 독재자가 의사결정을 하는 전제주의다. 공자와 플라톤은 철인(哲人)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로 봤다. 근대에는 모든 나라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이를 모아서 집단적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도시국가였던 고대 아테네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했다. 그런데 나라가 크면 이를 행하기 어려우므로 국민이 뽑은 대리인들이 여론을 모아 의사결정을 하는 간접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언론매체들이 여론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고 정치인들이 이를 제대로 통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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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이제 일반인들이 전통적 언론매체를 거치지 않고 서로 소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필요하면 한 곳에 모여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가능하게 됐다. 직접민주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아랍의 봄과 한국의 촛불혁명은 좋은 예다.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정부의 국가기관이 여론조작을 통해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도 강화됐다. 국가기관이 아니더라도 돈과 기술을 가진 소수집단이 여론을 조작해 사회적 의사결정과 선거를 왜곡하는 일도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됐다.

이러한 위협을 막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일반인의 자유로운 여론형성은 보호하되 국가기관이든 민간이든 ICT를 악용해 여론을 조작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시장에 새로 등장한 파생상품의 위험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ICT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둘째, 권위가 떨어진 의회·언론기관·시민단체들을 재건해야 한다. 이들의 권위가 떨어진 것은 기득권과 자신들의 이익 지키기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간접민주주의의 수단인 대리기구들이 튼튼해지려면 시대에 걸맞은 정치인·언론인·시민운동가들이 자라나야 한다.

민주주의는 이상향이 아니다. 현실과 이상을 연결하는 다리일 뿐이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도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기술진보와 사회변화에 따라 민주주의도 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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