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문화재의 향기]명량대첩비

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



정유재란이 일어난 후 원균의 휘하에 있던 조선 수군이 거듭 패하자 유성룡 등의 건의로 충무공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됐다. 그러나 장군의 명망만 높았을 뿐 그의 군대가 쓸 수 있는 배는 겨우 12척에 불과했다. 백성들이 구해 온 1척까지 더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군을 무찔러야 했던 이순신 장군은 조류의 흐름을 읽어 전남 진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해협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승리를 거뒀다. 그 유명한 1597년의 명량대첩이다. 이 공을 기리며 전라도 우도수군절도사 박신주가 ‘명량대첩비’를 건립하고자 1686년에 비문을 썼고 1688년 비석을 세웠다. 직사각형의 비 받침 위에 비 몸돌이 꽂혀 있다. 그 위로 구름과 용을 장식한 머릿돌이 얹혔다. 높이 2.67m, 무게 5톤인 이 비는 보물 503호로 지정돼 있다. 비문에는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진도 벽파정에 진을 설치하고 우수영과 진도 사이 좁은 바다의 빠른 물살을 이용해 왜적의 대규모 함대를 무찌른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전라우수영 동문 밖에 세워졌던 이 비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돼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혔다. 그러던 것을 1947년에 해남의 해안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번지)으로 옮겨 세웠다. 원래 우수영 터에 노인당이 들어서 원래 위치에서 700m 이상 떨어져 있던 것이 2011년 3월 마침내 제자리를 되찾았다. 오는 28일은 법정기념일인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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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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