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해주소반

1999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전용 공업단지 조성 문제를 놓고 담판을 시도했다. 당시 정 회장이 유력 후보지로 꼽은 곳은 바로 황해남도 해주(海州)였다. 해주가 남측과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서해를 낀 항만과 철도·도로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잘 갖춰진 교통 요충지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서해함대사령부 전력의 60% 이상이 배치된 군사요충지라며 해주공단을 반대했고 결국 지금의 개성공단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서해와 인접한 해주는 예로부터 항구·무역도시였다. 고려 태조 시절 남쪽으로 큰 바다에 접해 있다는 뜻에서 현재의 지명이 붙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땅이 넓고 비옥하며 인구가 많아 관서(關西)의 큰 고을이라고 적혀 있다. 일찍이 중국은 물론 아랍·유럽 등과 활발한 무역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곳곳에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목기류의 삼대 명품으로 알려진 해주소반이 다른 지역과 한눈에 구분될 정도로 독특한 문양을 자랑하는 것도 해상교통의 요충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해주소반은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의 장식으로 만들어져 판자 형식의 다리에 국화 등 다양한 꽃무늬를 새긴 경우가 많다. 또 한 개의 통나무를 잘라 통판으로 만들어 두툼하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장인들은 주로 오리나무나 은행나무를 재료로 많이 이용했는데 뒤틀리지 않는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화무늬의 소반은 장식이 섬세하고 세련돼 오늘날에도 가정 소품으로 인기가 높은 편이다. 2003년에는 해주소반을 담은 전통문화 특별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명록이 놓일 서명대가 특별히 전통 해주소반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한다. 청와대는 손님에 대한 초대의 기쁨과 환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7년 열린 2차 정상회담에서도 해주에 경제특구를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산업계의 기대감을 높여줬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해주에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것이 우리 측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방명록에 남길 글귀가 벌써 궁금해진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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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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