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왜 맛있을까] 文 대통령이 먹은 평양냉면은 어떤 맛이었을까

■찰스 스펜스 지음, 어크로스 펴냄

맛은 혀·코보다 눈·귀·기억 우선

이름·색깔도 음식 풍미에 큰 영향

무거운 식기 쓰면 더 맛있다 느껴

냉면집 나무 대신 쇠젓가락 사용

무나물 12시 방향에 놓일때 먹음직

음식의 과학·심리학적 발견 담아




광어는 오늘날 우럭과 함께 가장 대중적인 횟감으로 꼽힌다. 하지만 양식 성공 이전까지 광어는 아무나 먹을 수 없던 ‘귀하신 몸’이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서 생포된 이광수가 심문을 받으며 광어를 요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생각으로는 가난한 남한에서 고급어종 광어회를 먹어보기는커녕 아는 사람조차 적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광어 양식에 성공한 상황이었고 이광수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순식간에 구해온 광어회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왜 맛있을까’의 저자 찰스 스펜스는 감자칩을 씹을 때 ‘바삭’한 소리를 들려주면 소리가 없을 때보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괴짜 노벨상인 ‘이그노벨상’을 받은 괴짜 경제학자다. 그는 혀나 코보다 눈·귀·기억과 상상력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강조한다. 이 책엔 우리가 음식을 먹고 마시는 동안 일어나는 과학적, 심리학적 발견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음식의 이름, 가격 등이 맛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뇌의 첫 임무 중 하나는 어떤 먹을거리가 영양이 풍부한지, 독이 들어있어 피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때 재료나 요리의 이름은 맛을 느끼기 전 요리에 대한 선입견을 재빠르게 만들어낸다. 왠지 깊은 바다의 괴물처럼 보이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보다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메로구이’를 먹고 싶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이 두 어종은 같은 요리다. 팔리지 않아 고민이었던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는 ‘칠레산 농어’, ‘메로’로 이름을 바꾸며 판매량이 열 배 이상 올랐다.


뇌가 만들어낸 선입견과 맛의 불일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팻덕의 스타 요리사 헤스턴 블루멘탈은 1990년대 게 리조또와 곁들일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개발했다. 헤스턴이 느끼기에는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손님들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역겹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만든 아이스크림은 분홍 빛깔을 띠고 있었다. 손님은 이 아이스크림을 보며 달콤한 과일 맛, 특히 그중에서 딸기 맛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 아이스크림은 짭짤한 ‘게 수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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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사진제공=어크로스평양냉면/사진제공=어크로스


저자는 ‘맛’의 느낌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 요리학(gastronomy)과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의 합성어다. 심리학, 뇌인지학, 신경요리학, 디자인, 행동경제학 등을 접목해 음식의 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연구했다. 우리가 흔히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에는 정교한 심리적, 감각적 설계가 숨어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을 틀면 프랑스 와인이 더 맛있게 느껴지고, 독일 맥줏집 음악을 틀면 독일 와인 판매량이 늘어나는 식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미각, 시각, 촉각, 후각, 청각이 음식의 맛을 어떻게 가감하는지 설명하며 2부에서는 ‘완벽한 식탁’을 위해 어떤 조건들을 맞춰야 하는지 소개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실험들은 독자들의 웃음을 부른다. 저자는 ‘사악한 실험’을 하나 소개한다. 사람들을 초대해 스테이크와 튀김을 대접한 그는 어두운 조명을 갑자기 환하게 밝혔다. 손님들은 메스꺼움을 느꼈고 일부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파란색 스테이크와 녹색 튀김을 먹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울 중구의 평양 냉면집을 찾은 적이 있다. 이 냉면집은 미쉐린가이드로부터 별을 받은 곳이다. 그는 냉면집의 플레이팅, 소리, 식기에 대해 언급했다. 무나물의 플레이팅은 12시 방향을 향할 때 가장 맛있어 보이며 큰 식당인 만큼 소음은 괜찮지만 작은 식당이라면 음악으로 소음을 가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무거운 식기로 식사를 하면 사람들은 더 맛있다고 느끼는 만큼 대나무 젓가락 대신 쇠젓가락을 사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먹은 평양에서 판문점으로 날라온 평양냉면의 맛은 어땠을까. 1만6,800원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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