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휴전협정이 진행됐던 판문점은 65년이 지난 2018년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을 선언한 평화의 상징이 됐다.
남한과 북한은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을 진행했고 그 해 8월과 9월에 걸친 포로교환 또한 이곳에서 실시했다. 연해주에서 태어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변월룡(1916~1990)은 1953년 7월부터 약 1년간 당시 소련문화성의 파견으로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모국 땅을 처음 밟은 변월룡은 역사적인 장소와 상황을 전하는 증인이자 기록자로서 판문점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변월룡의 ‘1953년9월 판문점 휴전회담장’은 사람 하나 없는 회담장의 풍경이 쓸쓸함을 전한다. 탁자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1888년작 ‘아를의 밤의 카페’에 놓인 초록색 당구대를 떠올리게 한다. 고흐의 녹색 당구대는 핏빛 붉은 벽과 대조를 이루며 술 취해 흔들리는 몽환적인 카페에서 홀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 반면 판문점 회담장의 녹색보 덮인 탁자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이끼 같다.
조용하고 내부와 달리 창 너머 바깥이, 새어든 햇빛이 너무나 밝아서 역사적 비극이 더 두드러질 뿐이다. 이후 변월룡은 평양미술대학 학장으로서 대학 설립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그의 이름을 철저하게 지웠다. 화가 램브란트를 존경하며 굽은 소나무를 즐겨 그린 그가, 귀화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시기 변월룡이 그린 ‘판문점에서의 북한 포로 송환’은 1953년 8월 초에 남북한에 억류됐던 포로 교환이 판문점 일대 완충 지대에서 이뤄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송환 절차 과정에서 북한군 포로들이 “미군이 준 옷을 입고 조국으로 갈 수 없다”고 외치며 옷을 벗어 던진 일화가 전하는데 바로 이 작품에 그 장면이 드러난다. 8월의 뜨거운 태양 빛 아래 극적인 명암과 색감이 역사의 비극을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이 작품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소장품전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작가는 처음 밟은 고국 땅을 애정어린 눈으로 화폭에 담았다. 특히 금강산을 방문했을 때 그린 그림은 근대기에 관광 명소가 된 금강산이 아닌 작가에게 사적인 의미로 가치있는 금강산을 표현하고 있다. 다시 보는 판문점 또한, 이제는 달리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