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남북정상회담]'소떼 길' 위에 나란히 선 남북정상, 정전해에 싹 틔운 소나무 함께 심어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함께 넘나들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어 남북 정상은 오전 3대3 정상회담, 오후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후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눈다는 차원에서 함께 산책에 나섰고 11년 만에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판문점에 나무 한 그루를 함께 심었다.

남북 정상의 공동식수 행사는 장소와 나무 나이, 종류에까지 깊은 의미를 담아 진행됐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심은 나무가 뿌리를 단단히 내릴 장소로 선택된 곳은 남측 군사분계선 ‘소떼 길’ 근처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1998년 6월16일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바로 그 길이다. 정 명예회장의 뒤를 따라 소 500마리가 북한으로 향한 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소떼 길 인근에서 소나무 공동식수를 마친 뒤 표지석을 제막하고 있다./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군사분계선 소떼 길 인근에서 소나무 공동식수를 마친 뒤 표지석을 제막하고 있다./연합뉴스



북녘땅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17세 때 아버지가 소를 팔아 어렵게 마련한 70원을 몰래 들고 집을 나와 그 돈을 밑천으로 세계적인 기업을 세웠지만 남북 분단으로 금의환향할 수 없었다. 1998년 무려 83세가 돼서야 방북 기회를 얻은 정 명예회장은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간다”며 가슴속에 묻어둔 평생의 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선물한 소 1,001마리는 금강산관광 등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또 2000년 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의 촉매 역할도 했다. 지난 10여년간 남북관계 단절로 남북 민간 교류가 꽉 막힌 가운데 남북 정상이 이 길에 나란히 섬으로써 관계복원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협이 공식 의제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향후 비핵화 진전으로 대북제재가 완화될 경우 경협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이날 오전 회담에서는 백두산관광, 북한의 열악한 도로·철도 인프라 등 향후 예상되는 경협 분야에 대한 논의가 양 정상의 대화에 녹아든 채 오가기도 했다.


아울러 남북 정상은 함께 심을 나무로 소나무를 택했다. 이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자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수령은 65년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에 첫 싹을 틔운 나무다. 우리 정부는 이 소나무를 정부대전청사 서현관 정원에서 공수해왔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식수 행사를 위해 각각 한라산 흙과 한강 물, 백두산 흙과 대동강 물을 준비해왔다. 역시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민족을 하나로 잇겠다는 뜻에서였다.

관련기사



공동식수 행사를 마친 두 정상은 4시36분부터 ‘도보다리’를 걷기 시작해 도보다리 끝 군사분계선 표지석에 다다를 때까지 10분여간 산책을 이어갔다. 산책을 마친 두 정상은 도보다리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4시42분부터 5시12분까지 약 30분간 전 세계에 두 정상의 ‘오픈 정상회담’이 생중계됐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연신 손짓을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고 김 위원장은 계속해 고개를 끄덕이며 문 대통령의 말에 호응했다.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의 언급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보다리는 정전협정 후 중립국감독위원회(당시 체코·폴란드·스위스·스웨덴)가 관련 임무 수행을 위해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게 습지 위에 만든 다리다. 유엔사가 ‘풋브리지’(Foot Bridge)라고 하던 것을 번역해 ‘도보다리’로 불러왔고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원래 일자형이던 ‘도보다리’를 T자형으로 만들어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곳까지 연결했다


정영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