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지필름의 미국 사무기기 전문회사 제록스 인수를 놓고 벌어진 법정 다툼에서 법원은 후지필름의 제록스 인수를 반대해온 칼 아이컨 등 대주주인 헤지펀드들의 손을 들어줬다. 아이컨 등의 주장을 받아들인 법원이 합병 일시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제록스를 인수하려던 후지필름의 계획에는 차질이 예상된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뉴욕주 고등법원이 전날 제록스와 후지필름의 합병절차를 잠정 중단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합병의 모든 과정이 중지된다.
니혼게이자이는 “법원은 제록스의 제프 제이컵슨 최고경영자(CEO)의 판단과 이사진의 감시체제가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합병 일시중지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115년 역사의 제록스를 인수하려던 후지필름의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은 제록스 최대주주면서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한 칼 아이컨과 역시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3대 주주인 다윈 디슨이 인수합병(M&A)에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록스 지분 24.9%를 보유해 인수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말 후지필름이 제록스 지분 50.1%를 인수하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제록스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즉각 반대 의사를 표명한 데 이어 인수금지를 요구하며 제록스를 제소했다. 지난달에는 제록스의 제이컵슨 CEO가 이사회의 반대 의견에도 인수협상을 강행하고 있다며 새로운 이사를 추천할 권리를 위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양사 간 합병은 진흙탕 법정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니혼게이자이는 미국 기업에 정통한 변호사의 말을 빌려 “법원이 내린 ‘잠정금지’는 주주에게 불이익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 측의 인수절차를 일시적으로 금지한 것”이라며 “기업은 주주가 만족하는 인수조건으로 변경하거나 30일 이내에 항소해 잠정금지 명령을 취소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 후지필름은 판결 소식을 듣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법적 다툼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다만 인수지연으로 사업에 차질이 예상되는 만큼 후지필름이 아이컨 등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인수조건을 변경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고모리 시케타카 후지필름 CEO는 “통합의 이점을 설명하면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궤도 수정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인수 완료를 위해 오는 6월로 예정된 제록스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쟁탈전이 예상됐지만 이번 판결로 새롭게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며 “인수시기도 늦춰질 것으로 보여 후지필름의 해외전략 전면 재검토도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