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 증시를 짓눌러 온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 구상대로 한반도 ‘신(新)경제공동체’가 성사된다면 매번 고배를 마셨던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선진시장 입성도 노려볼 만 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을 가둬왔던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틀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비핵화 논의가 순항할 경우 1단계로 국가 신용등급 향상, 한국 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예상된다. 유승민 삼성증권(016360) 연구원은 “S&P와 무디스, 피치 3대 신용평가사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같은) 단기적 이벤트보다 ‘구조적인’ 리스크를 잠재적 신용등급 하락 요인으로 꼽아왔다”고 분석했다. 비핵화 합의는 이런 리스크를 완화시켜 신용등급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심화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진정시킬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2010~2017년 사이 북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시점에 한국 증시의 신흥국 대비 할인율이 커졌다”며 “북한이 증시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하락, 원·달러 환율의 상방 경직성 등도 예측된다.
이 같은 단기 효과 외에 증권가가 주목하는 것은 남북의 경제공동체 형성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한반도 신경제공동체는 환서해·접경지역·환동해 3개 경제 벨트를 축으로 투자가 이뤄진다. 이렇게 되면 개성공단 차원의 남북 경제협력주(株)가 아닌 기계나 운송, 건설·건자재, 철강 등 인프라뿐 아니라 생산재와 중간재, 나아가 소비재·서비스 부문까지 ‘한반도 수혜주’로 떠오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하나금융투자는 “건설과 유틸리티, 철강, 기계, 패션 등이 한반도 신경제공동체 시대를 주도할 업종”이라고 꼽았다.
북한의 낙후한 사회 기반시설에 돈이 몰리면 향후 통일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독일 통일비용 중 사회 보장성 지출에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다”며 “인프라와 관광, 에너지, 산업단지에 투자하면 한반도 경제 생산성도 높이고 궁극적으로 국내 증시에도 크게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규모의 확대는 실패로 돌아갔던 선진국 지수 편입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MSCI 선진시장 진입 실패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위험요소로 지적되곤 했다. 특히 오는 6월 예정된 중국 A주의 MSCI 신흥국 지수 편입은 한미 금리 역전과 함께 외국인 엑소더스를 부추길 악재로 꼽히는데,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한국도 해볼 만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유승민 연구원은 “지정학적 위험이 줄었다고 MSCI 선진시장 편입이 곧바로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한국이 MSCI 선진지수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로 경제발전 정도, 시장 규모, 시장 접근성 등이 계속 언급된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시장 개방이라는 ‘거대한 전환’을 앞둔 북한의 개혁 속도다. 김영환 연구원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의) 경제 펀더멘탈이 뒷받침되지 않아 통일 조약 발표 이후 일제히 조정 장세를 연출했다”고 우려했다. NH투자증권(005940)은 “주식시장 측면에서는 북한의 개방 속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한국의 적정 가치를 높이는 데에는 지정학적 위험 완화보다 차라리 배당 성향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