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엘리엇 "삼성물산 합병과정 손해 봤다" ISD 제기

삼성 때리며 현대車 동시 압박

엘리엇의 '성동격서' 전략 분석

"정부·현대車 알아서 처신하라"

현대차 지배구조 재편 과정

이익 극대화하려는 노림수

서울 송파구 국민연금 옛 본부 사옥. /연합뉴스서울 송파구 국민연금 옛 본부 사옥. /연합뉴스



“엘리엇의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입니다. 외견상 삼성을 쳤지만 실제로는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노림수라 할까요. 투자자국가소송(ISD)으로 현대차와 우리 정부에 ‘알아서 처신하라’는 일종의 경고 사인을 보낸 거죠.”

1일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우리 정부에 ISD를 제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재계의 한 지배구조 전문가가 내놓은 촌평이다. 그는 “현대차 대주주와 지배구조 개편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엘리엇으로서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모든 압박 카드를 동원하는 게 유리하다”며 “ISD로 정부에는 ‘괜스레 현대차 편에 서지 말라’는 뜻을, 현대차 오너에게는 ‘알아서 주가 부양에 나서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집중투표제·노동이사제 등과 같은 이념 색 짙은 정책을 펴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도 일 것으로 보인다. 자칫 정부가 투기자본으로 하여금 무분별한 소송을 제기하도록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발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개정안 통과로) 다중대표 소송 등이 관철되면 투기자본이 더 활개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보다는 현대차 노린 ‘노이즈 마케팅’=이번 소송의 실질적 타깃은 삼성이 아닌 현대차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모든 사안이 일단락된 상태다. 지난 2015년 양사 간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은 주식매수청구가격으로 지분을 다 팔고 나갔다. 삼성이 이번 소송 제기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삼성의 한 임원은 “(투기자본이) 이익 극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를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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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송이 성립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재계의 한 임원은 “법원 판결을 보면 삼성전자가 국민연금에 청탁하거나 청와대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양사 간 합병에 찬성하라고) 직접 압력을 제기하지도 않았다”며 “결국 국민연금의 판단에 따라 합병에 찬성했다는 얘기인데, 정부에 시비를 거는 게 타당한가”라고 말했다. 한 법률 전문가는 “(엘리엇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소송을 내도 ‘국민연금이 과연 정부나 국가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는 남는다”며 “각하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럼에도 엘리엇이 소송 전 법무부에 중재 의향서를 제출한 것은 현대차를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엘리엇이 정부에는 ‘현대차와의 갈등 국면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시장에는 ‘현대차가 여차하면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부각하려는 다목적 포석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연금의 현대차 지분은 8.44%(2017년 말 기준), 현대모비스는 9.82%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엘리엇으로서는) 소송 제기로 손해 볼 게 없다”며 “현재진행형인 현대차와의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짚었다.

◇정치권의 국민연금 흔들기 제동 걸릴까=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식으로 줄기차게 여론몰이에 나섰다. 법원 판결(내부 절차 무시에 따른 실형)은 이와 달랐지만 어찌 됐든 이번 정부의 스탠스가 ISD의 단초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권의 국민연금 흔들기에 대한 견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임원은 “전 정부의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을 문제 삼은 현 정부가 또다시 국민연금을 자기 영향 아래에 두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국민연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임에도 먼저 집중투표제에 대한 의결권 지침을 개정했다. 사실상 이 정부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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