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1년여나 시간을 끌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특별감리 결과 분식회계를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지난 정부 금융당국이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감리가 문제없다고 밝혔음에도 특별감리가 시작됐고 정부가 바뀌며 결론도 바뀌었다. 금융감독원은 한국공인회계사회 감리와 금감원 특별감리의 정도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에 대한 현 정부의 견제심리가 반영된 정치적인 결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바이오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회계감리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은 지난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불거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1년 설립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2015년 회계연도에 1조9,000억원 규모의 흑자를 냈다. 90% 가까운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가치 평가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신약이 유럽 승인을 받은 후 취득가액이 아닌 공정가액(4조8,000억원)으로 평가해 회계 처리를 했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할 경우 취득가가 아닌 시장가로 회계 처리를 할 수 있다.
금감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결론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는 신약 승인이 회계기준을 변경할 만큼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는 판단에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회사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승인을 받은 후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져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했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원은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관계회사 전환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바이오의약품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특성상 출범 초기 단계에 사업의 위험성이 극도로 높았던 만큼 종속회사로 볼 수밖에 없었다”며 “콜옵션 행사는 신약 승인 등 바이오 기업의 실적이 나온 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 측은 “관계회사로 전환할 당시 바이오젠은 사업보고서 어디에도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며 “콜옵션 행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무리하게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이 같은 지적은 불과 1년 전의 입장과는 정반대다. 지난해 2월16일 진웅섭 당시 금감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는 2015년, 2016년 반기보고서에 대한 감사나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감리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입장 변화는 향후 감리위원회·증권선물위원회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잠정 결론인 만큼 최종 제재 조치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증선위가 최종 결론을 낸 이후 검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고발할 경우 상장 특혜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상장 특혜에 대한 논란도 지난 정부 금융당국 수장이 이미 명쾌하게 정리했지만 뒤집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2월 정무위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려 해 우량 기업 상장을 유도하고자 거래소가 수차례 국내 상장을 권유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을 결정한 시기는 거래소 규정이 개정된 후인 2016년 4월이지만 여전히 상장 특혜 의혹은 꼬리를 물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처분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장 추진 무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비상장법인인 만큼 이번 특별감리에서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회계 관련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최종적으로 분식회계로 결정된다면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감사의견 ‘한정’을 내지 않은 회계법인도 제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회계 처리 변경으로 인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 상승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도 영향을 줬다는 데 있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6.3%를 소유한 대주주였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가 올라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았던 제일모직의 평가액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문제가 되는 제일모직의 상대적 고평가로 인한 합병비율 불공정 문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정부가 바뀌며 뒤바꿔진 회계원칙이 자칫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다시 삼성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삼성물산을 공격했던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를 공격하며 기세등등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로 결론이 날 경우 엘리엇은 다시 한번 꼬투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정부의 규제나 여론에 취약한 시점을 파고들어 낮은 지분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게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박성규·이지성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