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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근대의 걸작'展] 봄 마중나온 소녀, 덕수궁에 걸렸네

인상파 화가 오지호 '남향집'부터

한국 첫 서양화가 고희동作까지

덕수궁서 빛 본 걸작 90여점 전시

오지호 ‘남향집’ 1939년작, 캔버스에 유채, 80x6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오지호 ‘남향집’ 1939년작, 캔버스에 유채, 80x6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인성 ‘카이유’ 1932년작, 종이에 수채, 72.5x5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이인성 ‘카이유’ 1932년작, 종이에 수채, 72.5x5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시작은 1969년 10월, 옛 경복궁미술관에서였다. 당시 미술관은 일명 ‘국전’이라 불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열리는 전시장에 불과했기에 소장품 한 점 없이 직원도 4명뿐이었다. 이후 1972년 열려 564점의 작품을 선보인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이 전환점이 됐다. 미술 이론가와 원로작가들의 주도하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으로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하며 근대미술품을 발굴, 수집했다. 일제 강점기 ‘이왕직’에서 사들여 창덕궁에 보관중이던 한국 근대작품도 이 전시를 통해 처음 빛을 봤다. 이중섭이 개인과 시대의 고민을 담아 싸우는 닭 두마리를 그린 ‘투계’, 구본웅이 대담한 붓질로 친구인 시인 이상을 그린 ‘친구의 초상’ 등의 걸작이 이 전시를 계기로 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박수근 특유의 화강암 재질이 돋보이는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때 구입작품 중 최고가인 100만원이었는데 만약 지금 경매에 나온다면 7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1972년 당시만 해도 유화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시 이후 유족이 옛 이삿짐을 뒤져 자화상 2점을 찾아냈다. 미술관 소장품이 된 이들 자화상에는 동·서양화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작가의 눈빛이 생생하다. 이 역사적인 전시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으로 옮겨갔고 1998년 12월 덕수궁관이 정식 개관하면서 근대미술의 요람이 된다.

질곡의 한국 근대사만큼이나 극적인 덕수궁과 그곳에서 빛을 되찾은 근대 걸작들을 볼 수 있는 기획전 ‘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전이 3일 개막해 10월14일까지 열린다. 고희동부터 김환기, 유영국, 변관식, 한묵 등 73명의 90여 점이 한자리에 모인다. 작품도 명품인 데다 덕수궁관 개관 20주년, 이왕가미술관 건립 80주년이 맞물려 더 의미있는 전시다.


요절한 천재화가 이인성이 1932년 도쿄 유학중에 그려 서울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수채화 ‘카이유’는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당시 특선을 수상해 일본 궁내성이 매입했던 작품은 황실 승마선생의 하사품이 됐고 이를 미술관과 유족의 노력으로 되찾아 구입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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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가을’, 1935년작, 비단에 수묵채색화.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김기창 ‘가을’, 1935년작, 비단에 수묵채색화.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가 된 근대미술품도 볼 수 있다. 김환기의 1938년작 ‘론도’는 사람 형상 같지만 최소한의 형태와 색면으로 표현해 추상을 향해가는 근대기의 실험성을 보여줘 등록문화재 535호로 지정됐다. 오지호의 ‘남향집’은 대문 열고 나오는 소녀와 푸른 그림자를 통해 봄소식을 전하는데 인상파 양식을 한국적으로 토착화 했다는 점에서 등록문화재 536호가 됐다. 고희동의 자화상 역시 등록문화재 487호다.

출품작 상당수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교과서 등 교재와 언론에서 자주 접한 대표작들이기 때문이다. 박고석의 ‘범일동 풍경’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간 화가가 생생한 심정을 담아 그린 것으로 강인한 검은 윤곽선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금강산을 자주 들락이며 숱하게 작품을 남긴 변관식의 ‘외금강 삼선암 추색’이나 농촌생활과 평범한 일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봤던 이상범의 포근한 ‘초동(初冬)’은 그립고도 아련한 풍경을 보여준다.

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2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권진규 ‘지원의 얼굴’ 1967년작, 테라코타, 50x32x2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1938년 이왕가미술관이 문 열 당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미술관으로서 그 용도에 맞춰 설계된 건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건물 설계 도면과 관련 자료도 함께 선보여 미술관의 역사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 어림잡아도 수백억 원 이상인 출품작의 가치를 돈으로만 따질 수는 없다. 근현대사를 응축한 역사적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 올 봄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전시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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