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북녘 사람들 마음은 어떨까

정영현 정치부 차장




4·27정상회담의 여운이 길다. 11년 만에 만난 남북 정상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새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나란히 서서 발표한 판문점 선언, 화기애애했던 만찬과 헤어짐의 순간까지 그날 판문점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기대 이상이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보게 됐다는 여론도 생겼다. 은둔 왕국의 포악한 지도자인 줄 알았는데 유머러스한 젊은이였다는 식이다. 적어도 아버지와 비교해 개방적이고 화통한 성격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게 진짜 모습인지 이미지 메이킹 차원인지 아직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이 끝나야만 한반도의 새 미래가 열리겠지만 남북 정상회담 후 이미 많은 사람이 즐거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처럼 북한 땅을 가로질러 백두산에 올라가는 다소 고전적인 꿈을 꾸는 사람도 있고 옥류관 서울점이나 맥도날드 평양점처럼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교류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도 있다. 돈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은 이미 비무장지대(DMZ) 인근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증시에서는 소위 경협주로 불리는 건설·관광·물류 등의 종목을 골라 담기 시작했다. 북한이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마무리하고 나면 결국 중국이나 베트남·쿠바·리비아처럼 빗장을 풀고 경제 발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여기에 더해 북한에 매장된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도 좋고 저출산 고령화로 활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새 숨을 불어넣는 것도 좋다. 그런데 왜 이곳 남쪽 사람들의 마음만 있고 남쪽의 즐거움만 생각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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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미래·번영·발전.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찬란하게 눈부신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 앞에는 보이지 않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공동’이다. 북녘 사람들과 함께 가져야 하는 것이지 우리만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의 진짜 파트너는 며칠 전 사진과 화면으로 만난 김 위원장이 아니라 북한에 사는 평범한 수천만 명이다. 그곳 언론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보고 들어 남한이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산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우리가 북한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게 됐다고 들떠 있을 때 그들은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제2의 몰타회담’이라는 표현조차 북녘 사람들에게는 공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이 무척 감동적이고 고무적이지만 너무 들떠 있다. 번영을 위해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짐을 지고 걸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홀로 갈 수 없는 길이다. 그런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됐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대통령만의 몫이 아니다.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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