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부터 주당 52시간 근로를 시행해야 하는 기업들이 3개월마다 맞추게 돼 있는 탄력근로시간제의 단위시간을 6개월이나 1년으로 연장해달라고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거듭 요청했다. 특히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특정 기간을 위한 인력 보강에 나설 수밖에 없어 불필요한 비용 부담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전달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런 요구에 대한 구체적 입장 대신 “중소기업 납품단가를 현실화해달라” “여성 노동자의 차별을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2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김 장관과 대기업 간 간담회는 초점부터 어긋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탄력근로시간제 보완’에 치중했다면 고용부는 대·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에 공을 들였다. “고용부가 대기업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먼저 대기업들이 조직문화를 바꾸고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면서 “하지만 뒤로 갈수록 기업 요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쟁점이 됐던 이슈는 단연 탄력근로시간제 완화. 신제품 연구개발(R&D) 등 특정 시기에 바짝 업무가 몰리는 만큼 정부가 기업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 참석자는 “장치 산업의 경우 대규모 정비가 필요한 시기에 인원이 많이 필요한데 이때만을 위해 추가로 사람을 뽑아야 하느냐”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12명의 기업 측 참석자 중 절반 이상이 언급했을 정도로 이 이슈는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김 장관은 “공감한다” “검토하겠다” 등 원론적 답변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대기업에 대한 요구사항은 조목조목 거론했다. 김 장관은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주 52시간이 적용된다”며 “협력업체들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경영 애로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납품단가를 현실화하는 등 지원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중소기업·맞벌이 노동자들이 쉽게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정부가 거점형 공동 직장어린이집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대기업도) 상생협력 실천에 적극 참여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산업 전체에서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20%대에 머무르고 있는데 여성 노동자가 차별 없이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기업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 대기업 간부는 “즉문즉답 방식이 아니라 참석자 전원이 순서대로 5~10분 발언하고 장관이 마지막 발언을 하는 형태라 밀도부터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기업 목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고용부가 진정 기업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다”며 “이런 식이면 간담회가 필요한가 싶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부칙에 2022년 말까지 장관이 탄력근로시간제 관련 방안을 마련해 입법하도록 했는데 그때까지 방안 마련이 미뤄질까 걱정”이라며 답답해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신보라·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취업규칙으로 정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2주에서 1개월로, 서면합의(단체협상)로 정할 수 있는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각각 연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을 발의했다.
/이상훈·임지훈·하정연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