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 공식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이날 자리에는 이창동 감독, 배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참석해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후보에 오른 ‘버닝’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
이창동 감독은 2007년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시’에 이어 ‘버닝’까지 연출작 3편 연속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또한 2000년 제35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박하사탕’, 2003년 제43회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다시 한 번 소개 된 ‘오아시스’까지 6편의 연출작 중 5편이 칸영화제에 진출했다. 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까지 한 이창동 감독은 올해 제71회 칸영화제에 ‘버닝’을 진출시켰다.
‘버닝’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영화. 프랑스 칸 현지시간으로 오는 16일 오후 월드프리미어를 통해 첫 공개된다.
2010년 ‘시’ 이후 8년 만에 복귀작 ‘버닝’을 내놓은 이창동 감독은 “젊은이들이 생각할 때, 지금까지 세상이 발전했지만 앞으로는 더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여길 것 같았다.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마주하면서 무력감과 두려움이 내제돼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영화의 의미를 생각했다.
이어 “‘버닝’은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영화다. 단순하게 보면 종수라는 주인공이 벤이라는 인물을 만나는데, 벤이 어떤 인물일까라는 미스터리부터 출발한다. 벤이 누구인지 따라가는 이야기이면서 그 가운데 혜미라는 여자친구가 있다”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종수는 어떤 인물일까 하는 새로운 미스터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데드풀2’이라는 막강한 청불 영화와 비슷한 시기 경쟁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데드풀’도 ‘어벤져스’도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른다. ‘어벤져스3’의 광풍이 빨리 끝나고 버닝이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저희 영화가 청불 등급을 받았는데, 이유가 방화, 살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자극적인 장면은 없다. 어쨌든 나는 영화 자체는 다른 의미에서 꽤 자극적이고 재미있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창동 감독은 “나는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질문하면서 답을 찾기 원했다. 소통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는 나의 변화된 생각이 담겨 있다. 좀 다른 방향으로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 얼마만큼 받아들일지 궁금하다”며 ‘버닝’이란 제목의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참고한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따서 지은 것이다. 가능하면 원작의 의미를 살리고 싶어서 짓게 됐다”고 밝혔다.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는 열린 결말로 끝을 맺었다. ‘버닝’의 결말에 대해 그는 “어떤 의미에선 충격적이기도 하고 반전이기도 하다.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결말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사실 ‘윤리’라는 건 개인의 기준, 개인의 선택을 전제로 한 말이다. 그래서 ‘버닝’에서 윤리를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버닝’은 윤리보다 다른 방향에서 관객들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감각’과 ‘정서’가 우선시되는 영화다. 윤리가 ‘머리’에 가깝다면, 이번 영화는 젊은이들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기 때문에 소통을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배우들과의 호흡 방식으로 “흔히들 ‘변태감독’이라 말하는데 나의 방식은 단순하다. 뭘 만들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맞게 살아가길 요구할 뿐이다. 테이크를 많이 가고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방법은 나와 다르다. 배우 스스로 인물의 감정을 가져가길 바랄 뿐이다”며 “‘버닝’은 전작들에 비해 인물들이 처하는 상황이 다르다. 어려운 상황을 몰아붙이지는 않다.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 처하는 것들이 어렵다.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 했다. 세 배우 분들이 내 예상보다 더 잘 해주셨다”고 전했다.
유아인은 ‘버닝’에서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 역을 맡아 연기했다. 이날 유아인은 첫 칸 입성 소감으로 “부담스럽다.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도 모르겠다”라며 “칸 영화제에 가는 게 내 개인사가 아니라 영화를 위해 가는 것이니까 그 곳에서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이 영화를 잘 알리기를 원한다. 많은 분들이 ‘버닝’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해 재탄생된 영화다. 원작과의 비교를 묻는 질문에 유아인은 “원작을 읽기 전에 시나리오를 봤다. 시나리오 자체가 워낙 이전의 것들과 달랐다. 굉장히 구체적인 묘사와 텍스트가 많았다. 거의 소설에 가까울 정도였다. 인물의 감정과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원작의 모티브 말고는 한국식으로 완전히 재탄생된 작품이다.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메타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이번 연기의 특징으로 “본연에서 다가가기보다 많은 강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표현에 대한 강박, 화려함, 다이내믹함을 벗어나려 했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나고 애쓰던 순간들과 달랐다. 관성에서 벗어나서 감독님이 원하셨던 느낌 위주로 연기하려 했다”고 전했다.
이어 “‘버닝’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이지만 오히려 나는 청소년들이 많이 봐야할 영화라 생각했다. 관객 입장으로 봤을 때 전혀 새로운 영화다. 영화의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선과 악, 명과 암, 꿈, 희망 등을 영화로 수도 없이 접하는데 세상이 계속 좋아지는 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제대로 접근하는 느낌이 안 들었다. 명확성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보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훨씬 윤리적으로 접근한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정체불명의 남자 벤으로 분한 스티븐 연은 스티븐 연은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로 제70회 칸 국제 영화제에 참석한 데 이어 올해 ‘버닝’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스티븐 연은 미국과 한국 사회를 사는 청년들의 모습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는 예전에 개인주의가 심했다면 이제는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많아졌다.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에 비해 한국은 예전에 비해 ‘개인’의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볼 때는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라고 고찰했다.
이와 함께 그는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영광이었다. ‘버닝’은 보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계에 전해졌으면 좋겠다. 칸에 갈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전환을 맞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극 중 종수의 고향친구 해미 역의 전종서는 원작 ’헛간을 태우다‘와 비교하는 질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분노, 억울함 등 모든 것들이 미스터리하게 담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과 첫 작품을 시작, 데뷔 하자마자 칸 진출을 하며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것에 부담이 없는지 묻자 “영화 속 내 모습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에 대한 부담은 없다. 다만 긴장되고 불안함을 느끼는 게, 지금의 스케줄과 관심이 처음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당하게 보여드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제71회 칸국제영화제는 오는 5월 8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칸에서 열린다. 한국 작품 중에서는 ’버닝‘이 경쟁부문, 윤종빈 감독의 ’공작‘이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버닝’은 5월 17일 개봉한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