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촛불 든 대한항공 직원들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하라”

촛불 든 대한항공 직원들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하라”



총수 일가의 일상적인 ‘갑질’에 오랜 시간 숨죽여 지내던 대한항공 직원들이 광장으로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4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는 대한항공 직원 등 500여명이 모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최근 들어 봇물 터지듯 터진 한진 일가의 각종 ‘갑질’ 사례와 탈세 의혹 등을 거론하며 “대한항공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조 회장 일가가 전원 퇴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 직후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을 만들어 한진 일가의 각종 ‘갑질’ 사례를 수집했다.

이 제보방에서 나온 구체적인 제보와 증언들은 언론에 전달돼 세상에 알려졌고, 경찰 등 수사기관이 내사를 벌이고 정식 수사에 착수하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한진 일가가 대한항공 직원과 조직을 활용해 일상적으로 밀수·탈세를 저질렀다는 의혹 역시 이 제보방에서 나왔다.

직원들의 제보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파문이 커지자 관세청도 나서 탈세 의혹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한진 일가는 2차례 자택 압수수색에 이어 소환 통보를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채팅방에서 조씨 일가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자는 제안이 나왔을 때 이 집회가 현실화될지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컸다.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채팅방에서는 각종 ‘갑질’을 용감하게 증언하고 거침없이 의혹을 제기하기 쉽지만, 과연 공개된 장소에 직접 나와 목소리를 낼 직원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의문이었다.

직원들 역시 대한항공의 조직문화를 감안할 때 회사를 비판하는 집회에 참석해 신분이 드러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며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이번이 조씨 일가의 갑질을 끊어내고 경영을 정상화할 마지막 기회”라며 서로를 독려했고, 이날 촛불집회를 성사시켰다.


이들은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가면이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집회에 가자’, ‘집회에서 누가 말을 걸어도 답하지 말자’, ‘집회가 끝난 뒤 바로 택시를 타고 귀가하다’는 등 지침을 공유하며 촛불집회를 계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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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한항공 직원들의 집회는 변변한 진행자도 없이 열린 ‘아마추어’ 집회로 보였다.

신원 노출을 우려해 얼굴에 마스크를 써 마이크를 사용해도 목소리가 마스크에 막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언대에 선 직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총수 일가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대한항공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시민들도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한진 일가의 ‘갑질’ 행태에 분노하며 집회에 함께 참석했다. 시민들은 직원 발언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내며 이들을 응원했다.

이날 대한항공 직원들은 “대한항공을 사랑하기에 이 자리에 모였다”며 “대한항공이 더는 조씨 일가에 의해 망가지지 않도록 퇴진을 이뤄내고, 자랑스러운 일터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도 채팅방에 “해외에서 실시간 응원 중이다”, “지방이라 참석하지 못했지만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다.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날 촛불집회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등 외부의 도움 없이 진행됐다.

촛불집회를 후원하기 위해 이날 온라인에서 진행한 후원모금에는 당초 목표인 1천만원을 훌쩍 넘긴 2천500만원 이상이 모금됐다.

촛불집회를 기획한 ‘관리자’는 “조양호 회장 일가와 무능한 경영진의 일괄 사퇴 및 갑질 근절을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2차·3차 촛불집회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전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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