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지금도 노조 눈치 보는 판국인데, 노동이사제 절대 불가”

윤석헌發 도입 요구에 재계 강한 반대

유럽은 경영 아닌 감독 이사회 참여

"주주 가치, 경영권 훼손 불가피"주장

최근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내정된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 그가 노동이사제 도입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최근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내정된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 그가 노동이사제 도입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협상이 안 되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게 한국입니다. 노조가 이렇게 센데, 노동이사제라니요. 이사회 운영도 제대로 안 될 겁니다”

4일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노동이사제라는 화두에 손사래부터 쳤다. 최근 금융감독원장에 공기업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했던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가 내정되자 꺼진 듯했던 노동이사제 불씨가 되살아나는 분위기지만 그는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가 되면 경영권과 주주 권리 침해는 불 보듯 할 것”이라며 “일례로 구조조정도 중요 경영 사안인데 이런 것을 (이사회에서) 논의하려면 비밀이 유지돼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재계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이사제와 거리 두기에 나섰다. 정부는 공기업·공공기관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후 민간기업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노동이사제에 반대하고 있다. 일단 한국의 강성 노조를 첫손에 꼽는다. 한 기업 관계자는 “지금도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세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느냐”며 “CEO들이 지금도 노조 눈치를 보는 판인데 이사회에 노조를 대변할 대표를 넣으라는 얘기는 너무 나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는 옥상옥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더구나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하려는 공기업의 경우 신분 보장 등의 이유로 노조 입김이 세기로 유명하다. 굳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유인이 약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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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 모습. KB금융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연합뉴스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 모습. KB금융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연합뉴스


노동이사제가 지난 1980~90년대 이미 도입된 유럽과 우리의 상황이 크게 다른 점도 반대의 근거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독일에서 보듯 유럽은 이사회 구조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돼 있다”며 “노동이사들은 경영 현안을 다루는 경영이사회가 아니라 감독만 하는 감독이사회에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와 이사회 구조가 다르다는 점에서 유럽 예를 들어선 곤란하다”며 “만약 이해관계자가 경영에 다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협력업체, 소비자 대표 등도 (이사회에) 넣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유럽에서조차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노동이사제에 대한 제도 개선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노조가 우리보다 덜 강성인 유럽도 도입 당시 기업 반발이 컸다”며 “실제 이 제도를 활발히 운영하는 기업 상당수는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곳”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임원은 “부작용이 빤히 보이는 노동이사제 같은 제도를 정부가 드라이브 거는 자체가 무리”라며 “정부의 방침대로 이 제도가 크게 확대되면 주주들의 소송 제기도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이사제가 주주 이익을 갉아 먹는 쪽으로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주요 기업의 지분을 대거 보유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통해 노동이사제를 밀어 부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임원은 “(만약 국민연금이 노동이사제에 찬성한다면)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어 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지난 3월 열린 KB금융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 시도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주총에서 노조 추천의 사외이사 선임안건이 상정됐지만 부결됐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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