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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③] '라이브' 노희경의 배성우에 의한 사람을 위한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작품은 한국 드라마의 바이블과 같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속에서 그의 작품은 늘 사람들이 당면한 시대적 현실과 고민을 함께 나눴다. 여느 드라마들이 연애와 판타지로 범벅된 꿈속을 거닐 때 그의 작품들은 그꿈 깨라며 명치에 묵직한 한방을 날리고는 했다. 속이 쓰리다 못해 뒤집어질 만큼.

최고의 작가로 불리면서도 노희경의 작품들은 유독 시청률과 인연이 없었다. 특히 ‘허준’과 동시대에 붙는 바람에 쓴맛을 본 ‘바보같은 사랑’의 경우 아직도 열혈 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저 시청률 드라마를 손꼽을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이 시청률과 거리가 먼 이유를 ‘외면하고 싶은 지독한 현실’과 연결짓는다. 한 가지 더 보태고 싶다. 삶과 죽음,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 경계에서 인생의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을 굳이 드라마로 봐야겠냐는 부담도 있지 않았을까.




‘라이브’는 그 묵직한 메시지를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감싸고, 경찰 지구대의 에피소드로 포장한 작품이다. 사건을 해결하면 조직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 과정을 해결하며 등장인물이 성장한다. 강력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시보들이 성장과정을 거쳐 경찰이 되고, 사명감에 취해 자기 위주로 살던 경찰은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재사회화, 아니 어른이 되는 과정을 차근 차근 설명한다.

시보들은 처음 마주한 강력범죄 현장에서부터 숨이 멎을 듯한 공포를 느낀다. 교통사고, 살인사건의 시신은 경찰이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운동만 했던 그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충격이다. 세명 중 한명은 도망치고, 한명은 도망치려 준비하고, 남은 한명은 악에 받친다.

이들의 두려움을 풀어내는건 사람이다. 지방으로 도망친 송혜리(이주영 분)를 달래는건 늙은 사수 이삼보(이얼 분), 성폭행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한정오(정유미 분)를 감싸주는건 염상수(이광수 분), 악에 받친 이광수에 진심을 실어주는 이는 오양촌(배성우 분)이었다.

어른 경찰은 현실과 맞선다. 질 수 없는 싸움이다. 안장미(배종옥 분)와 오양촌은 이혼, 기한솔(성동일 분)은 암 투병, 강남일(이시언 분)은 생계, 이삼보는 정년퇴직. 당장 눈앞에 닥친 일도 해결하기 힘든데 조직은 어이없는 희생을 요구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징계받은 오양촌, 연쇄성폭행범을 늦게 잡은 탓을 뒤집어쓴 안장미, 취객의 자해로 독직폭행으로 몰린 김민석(조완기 분). 이들에게 징계란 불합리하지만 이를 극복할 힘은 없다.


세상이, 조직이란 것이 그렇게 더럽다고 생각할 무렵, 드라마는 드라마답게 서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적폐를 깬다. 범인 검거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한 염상수를 위해 지구대 동료들은 감찰에 주늑들지 않고, 지구대장과 팀장은 서장에 맞선다. 사수 오양촌은 그동안 삶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사명감이 사라졌다며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냐”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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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진심이다. 사람이 사람과 진심으로 나누는 마음. 그것이 어린 시보를 경찰로 만들고, 끊어졌던 부부의 마음을 맞췄다. 세상 모든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



어머니의 존엄사 직후 오양촌은 안장미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내 자존심의 바닥, 결코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을 전한 그는 “난 네 옆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깊은 숨을 내쉰다. 안장미는 답한다. “어디 멀리 가지마. 그래도 내 인생에 네가 있다는건 큰 힘이고 빽이야. 내 인생에 자기마저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상처를 반으로 나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정오의 마음도 사람이 채운다. 시작도 전에 이별을 말하는 그에게 최명호(신동욱 분)는 “사랑을 할 준비가 안 된 건 나다. 아직 그 사람을 못잊었나 싶더라”며 상대를 배려한다.

염상수는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 한정오에게 “뛰자”고는 뒤에서 달리며 눈물흘린다. “위로도 안해주냐”는 그에게 “슬퍼, 너무 슬퍼서 아무말도 안나와”라는 그에게 한정오는 답한다. “상수야 나 너무 시원해. 누구한테라도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나봐. 너에게라도 말할 수 있어 너무 시원해” 그리고 염상수가 위기에 처한 순간 반대로 한정오가 가슴에 그의 얼굴을 묻는다. 괜찮다면서.

사람이 사람으로 치유받는다는 노희경 작가의 공통된 메시지가 대중적인 소재와 결합했을 때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흉내조차 엄두도 안나는 취재와 핵심을 파고드는 대사, 여기에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까지 깔끔하게 들어맞았다. 그가 이제는 완벽해졌구나, 노희경이 대중성을 입으면 이렇게 무서우리만큼 멋지구나 싶어 무릎을 탁 친다.

머릿속이 봉은사 사거리에서 교통정리하는 오양촌의 신바람나는 호루라기 소리로 가득하다.

김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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