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근로단축 밀어붙이는 정부]"업무는 안 줄었는데 강제로 컴퓨터만 끄네요"

■불만·혼란 커지는 근로자들

직원들 '워라밸' 기대 높지만

신제품 개발 등 일정 맞추려

집에서 업무 연장·주말출근 등

'칼퇴근' 정책 현실과 안맞아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다. 기업들이 두 달 뒤로 다가온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다양한 사내 정책을 시행하면서 소속 직원들 사이에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7일 재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상당수 기업들은 주당 근로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강제 퇴근’ 정책을 시행 중이다. 신세계·롯데·CJ그룹 일부 계열사는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 퇴근 시간 컴퓨터를 강제로 종료하는 PC오프제를 실시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이른바 ‘워라밸 코디네이터’를 도입해 퇴근을 독려하고 부서별 퇴근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근태 입력 시스템을 개편해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을 구분해 주당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방식을 자동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 직원들은 억지로 퇴근하다 보니 집으로 일거리를 갖고 가거나 주말에 출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LG생활건강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신제품 생산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 보니 기일에 맞춰야 하는데 억지로 퇴근해야 하니 노트북을 챙겨서 집에서 일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업무상 기일을 어기면 결국 담당 직원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퇴근만 강제하는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책임근무제가 정착돼 있는 네이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네이버 직원 강모씨는 “회사 분위기상 성과주의가 강하고 프로젝트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 반강제적으로 주말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팀들이 다수”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직원 박모씨도 “자율출퇴근제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지만 개발 직군의 불만이 많다”며 “업무 특성상 근무량이 많아 주 52시간을 훌쩍 넘기는데 주당 근무시간을 맞춰야 하니 일을 하고도 휴식시간에 산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의 ‘근로시간 단축의 산업별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면 부동산임대업과 숙박음식업 근로자들은 각각 월평균 29.7시간, 20.9시간의 초과근로를 해야 한다. 도소매(15.6시간), 운수업(15.2시간), 제조업(14.9시간)도 초과근로가 필요하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한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등 근로자가 혹사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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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체감한다는 의견도 있다. CJ대한통운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에도 오후 5시30분이면 퇴근 노래가 나왔지만 직원들 대부분은 노래를 들으면서 야근을 준비하고는 했다”면서 “아직 시범 기간이지만 PC오프제가 정착되면 칼퇴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직원들의 우려에 대해 삼성전자는 “일한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처리하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주 52시간을 산업계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업계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도 “집으로 업무가 연장되는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다”며 “부서별로 상황을 점검하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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