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시민 발포 거부’ 안병하 “5·18은 계엄군 과격진압이 원인”

안 치안감 유족, 10일 고인 자필 메모·유품 공개…광주시에 기증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이 10일 5·18 기록관에서 고 안병하 치안감이 생전에 남긴 메모를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이 10일 5·18 기록관에서 고 안병하 치안감이 생전에 남긴 메모를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5·18민주화운동 발생 동기는)과격한 진압으로 인한 유혈사태로 시민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5·18 당시 시민에 대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당시 전남경찰국장) 유족이 10일 공개한 고인의 메모에서 안 치안감은 5·18이 발생한 이유를 이같이 증언했다.


유족들은 이날 광주 5·18 기록관에서 그간 간직해오던 고인의 메모와 유품을 공개하고 광주시에 기증했다. 안 치안감은 1980년 5월 3일 학생 시위가 시작된 뒤 같은 달 24일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될 때까지 자신이 본 광주 상황을 자필 메모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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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치안감은 계엄군의 과격한 진압을 비롯해 악성 유언비어 유포, 김대중 전 대통령 구속에 따른 시민 자극 등이 5·18 발생 원인이라고 봤다. 그는 16일까지 시위는 평온했으나 17일 자정 이후 계엄령 확대, 공수부대 투입과 진압 시작, 이에 자극받은 시민들의 무장으로 상황이 악화했다고 메모에 적었다. 또 당시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에는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 금지),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엄금), 주동자 연행 시 지휘보고(식사 등 유의)’라고 기록했다. 계엄군 진압 후에는 ‘주동자 검거 등 중지, 군에게 인계받는 부상자 치료, 식사제공’ 등 시민들을 최대한 도울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21일 옛 전남도청에 있던 경찰 병력의 광주 외곽 철수 과정에서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철수할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마음도 남겼다. 그는 또 당시 참모 중에 지휘 책임을 지고 함께 강제 퇴직당한 간부들이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당부도 남겼다.
/박신영인턴기자 wtigre@sedaily.com

박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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