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사정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0일부터 이틀에 걸쳐 서울 강남구 업비트 본사를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업비트는 거래소 법인계좌에 들어 있는 고객 자금을 대표자나 임원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는 식으로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암호화폐를 실제로 보유하지 않았으면서 전산상으로는 보유해 투자자를 속였다는 사기 혐의도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네스트도 횡령과 사기 혐의로 김익환 대표 등 임직원 4명이 구속됐다. 금융당국은 암호화폐거래소의 허술한 법인계좌 운영실태를 우려해왔다. 이날 업비트 압수수색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투자자들의 투매로 오후3시 기준 993만원에서 1시간 후인 오후4시에는 943만원으로 5%가량 급락했다. 업비트 측은 압수수색과 관련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내 상위 암호화폐거래소 4곳 중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지 않은 곳은 코빗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가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위 거래소 빗썸은 해킹 사건이 발생해 올해 2월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빗썸은 지난해 2건의 해킹을 당해 이용자 정보 3만1,506건과 빗썸 웹사이트 계정 정보 4,981건 등 총 3만6,487건의 정보가 유출됐다. 탈취된 계정 가운데 266개에서는 암호화폐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3위 거래소인 코인원도 올 1월부터 마진 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들의 해킹·횡령 등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한 투자자는 “투자 불확실성에다 거래소 문제까지 연일 터져 나오면서 투자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의 규제 공백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거래소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 권한이 없어 법인계좌나 실명계좌를 내준 은행을 통해 거래소의 자금 흐름을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은 거래소에 대한 규제를 최근 강화하는 추세다. 올해 초 코인체크 해킹 사태를 겪은 일본은 거래소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일본 금융청은 올 하반기부터 거래소 해킹을 막기 위한 새로운 규제를 적용할 예정이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영업정지 명령도 내릴 방침이다. 미국도 지난 3월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증권거래소와 달리 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규제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암호화폐 이더리움을 증권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은 법적 미비로 점검에 나서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암호화폐거래소의 거래내역 정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으며 신고 의무를 위반한 거래소에 대해 영업중지 등 시정명령과 임직원 제재, 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법적 근거도 담았다. 일부에서는 국제적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사이 거래소들이 난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당국은 1월 암호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실명제를 도입했지만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거래소가 거의 없어 유명무실화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미국과 일본에서 거래소 규제를 강화하는 사이 해외 자본이 국내 암호화폐 시장을 노리고 있다”면서 “올 초에 비해 투자 열기가 식었다고 시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