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골란고원

1415A39 만파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비밀 협상이 열렸다. 협상 테이블에는 영국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훗날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의 숙부인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가 마주 앉았다. 여기서 전후 오스만제국의 영토인 중동을 분할 점령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됐다. 지루한 협상 끝에 1916년 5월 합의가 이뤄졌다.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라크를,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중동 분쟁의 씨앗을 뿌린 ‘사이크스-피코협정(Sykes-Picot Agreement)’이다. 1918년 영국과 프랑스는 협정대로 중동에 대한 분할 점령에 들어갔다. 골란고원은 당초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로 여겨졌지만 1923년 영국이 프랑스에 넘겨줬다. 이후 골란고원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인 시리아의 일부가 됐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를 공격해 골란고원을 점령한 뒤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했다. 1981년에는 골란고원법(Golan Heights Law)을 제정해 사실상 자국 영토로 병합했다. 골란고원은 아직 이스라엘이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엄연한 시리아 영토로 인정된다. 196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골란고원을 둘러싸고 분쟁이 이어지는 것은 이곳이 갈릴리 지역의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라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요르단강과 갈릴리호수를 끼고 있어 수자원이 풍부하다는 점도 이 지역을 탐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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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골란고원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연일 상대 군 시설에 로켓 공격과 공습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이란은 그동안 시리아 내 자국 군 시설이 공격받아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국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핵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협정 탈퇴를 선언한 이상 이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충돌하면 중동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국제유가에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 될 수 있다. 모쪼록 중동 정세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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