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데이터 경제 시대다. 지난 2년간 휴대용 기기로 유통된 지구촌의 정보량은 2,000년 인류문명이 창출한 양과 맞먹는다고 한다. 데이터 경제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데이터 활용으로 혁신성장과 복지 증진을 구현할 수 있는 근거를 분석해 이점은 극대화하고 리스크는 최소화하는 정책 가이던스를 제시한 바 있다.
한국 데이터 경제의 성격은 특이하다. 지난 2017년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디지털 경쟁력 평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지수, 가구 인터넷 접속률, 인터넷 평균 접속 속도 등은 세계 최고이면서도 경쟁력 순위는 63개국 중 56위였다. 데이터 활용률 5% 이하라는 불편한 진실이 발목을 잡았다. 의료 분야에서도 병원의 전자건강기록 보급률은 세계 최고이면서 의료정보 호환은 8%에 불과하다.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나 적응 수준은 139개국 중 25위(2016 스위스 UBS), 규제 경쟁력은 105위(2016 세계경제포럼)다. 규정에 없으면 하면 안 되는 규제 족쇄로 실리콘밸리 공유경제 스타트업의 70%가 한국 땅에서는 불법이라는 말도 있다.
미국 최고의 직종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다. 서비스·금융·보험·제조업·블록체인 등 빅데이터 산업이 그들을 부르고 있다. 우리의 사정은 딴판이라 청년층이 선호하는 직업 1위는 공무원이다. 창업공화국이라는 우스갯말까지 있지만 운수업·식당 등 영세한 생계형에 치우쳐 기술 기반형 창업은 매우 저조하다.
데이터 과학이 신산업을 창출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절실함에도 OECD 국가 평균 대비 질은 떨어지고 양은 많은 규제가 혁신산업의 숨통을 죄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당 규제비용이 최고 수준이고 2013년 OECD 기준 터키·이스라엘·멕시코 다음으로 시장규제가 심하다. 국가 간 비교에서 규제 완화에 따라 청년층 취업이 늘어난다는 통계도 있다. 단언컨대 한국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규제 혁신에 달려 있다.
선진국은 규제 완화에 따라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 데이터 이용에서 미국은 비식별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하고 개인정보에 대한 일괄적 규제가 아니라 사후감독(opt-out) 조치를 적용한다. 정보 공개에 까다로운 유럽연합(EU)도 학술·통계 등 비영리 목적에 대해서는 동의 없이 정보 공유를 허가한다. 아울러 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따라 조건부 사후동의를 허용하고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는 디지털 싱글마켓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의 개인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위치정보법·신용정보법 등으로 규제받고 있다. 최근 이들 법 개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가명정보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고 국회에도 몇 개의 법안이 상정돼 있다. 대체로 재식별할 수 없는 익명정보는 개인정보에서 제외하되 익명 처리의 적정성 평가를 위한 절차와 기준을 정하고 가명정보의 정의, 활용 범위와 목적, 기술적 적정성 평가, 고의적 재식별자 처벌 등 기준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례로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보호와 방어권을 위해 정보 수집 항목과 수집 이용 목적을 세분화하고 사전동의권을 강화하게 되는 경우 오히려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 방대하고 난삽한 고지사항을 깨알 같은 글씨로 나열하고 줄줄이 사전동의를 받는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그 내용을 숙지하고 동의 클릭을 하고 있을까. 오히려 형식적인 ‘묻지마’식 동의 남발로 개인정보 보호에 역행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는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보의 ‘보호’와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사이버 안보 차원의 환경요인을 면밀히 검토해 고도화·지능화되고 있는 사이버 범죄를 예방하는 한편 데이터 경제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생태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과제다. 경제적·산업적 가치를 넘어 공익적 사회문제 해결에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시대 변화를 이끄는 정부의 선도적인 역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