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 고무의 발견과 하나뿐인 지구

김홍표 아주대 약학과 교수

노력으로 일군 고무의 진화처럼

앞으로도 기술혁신 위해 힘쓰되

지구와 공존할 생활방식 모색을




밖에는 한창 5월의 노란 꽃들이 피었다. 씀바귀에 고들빼기, 그리고 땅에 좀 더 가까이에는 뱀딸기 꽃도 보인다. 애기똥풀 무리도 얼굴을 내민다. 애기똥풀의 줄기를 잡아 꺾으면 아직 밥을 먹어보지 못한 신생아 대변의 황금색과 흡사한 유액(latex)이 핏방울처럼 불거져 나온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덜 익은 양귀비의 과실에 생채기를 낸 뒤 채취한 유액을 말린 것이 아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천연 유액은 단연 고무일 것이다.

이른 봄 채취하는 고로쇠 수액이나 불에 고아 시럽을 만드는 캐나다의 메이플 단풍나무의 수액은 유액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관 혹은 체관을 따고 흐르며 탄수화물이 다량 함유된 것이 수액이라면 유액의 성분은 화학적으로 다양하기 그지없다. 애기똥풀이나 아편에는 알칼로이드가 함유돼 있으며 매우 쓰다. 천연고무의 유액도 쓴맛이 나지만 주요 성분은 구성단위로 따지면 콜레스테롤과 비슷한 폴리이소프렌(polyisoprene)의 중합체이다.


15세기 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고무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목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래 유럽인들은 점차 고무의 존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735년 천문 지리학자였던 샤를마리 드 라 콩다민은 에콰도르 원주민들이 나무에서 하얀 유액을 모아 연기를 쬔 다음 여러 모양의 물건을 만드는 사실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렇게 유럽에 소개된 고무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점차 그 용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기에 들어 있는 산소의 존재를 밝힌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연필로 쓴 글씨를 고무로 지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지우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지우개는 추우면 딱딱해지고 더우면 끈적거리는데다 냄새도 고약했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이때 찰스 굿이어가 등장했다. 실수로 난로 위에 황과 고무가 섞인 통을 얹어 놓고 외출에서 돌아온 굿이어는 그 고무가 뛰어난 탄력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우연 덕분에 황이 첨가된 고무가 인간 세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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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스코틀랜드의 존 보이드 던롭은 거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두통이 심해진 아들을 위해 공기 튜브를 가진 자전거 고무바퀴를 만들었다. 지우개를 연필 끝에 붙인 필라델피아 출신의 화가 하이만 리프먼도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친구였던 굿이어로부터 특허권을 사들인 하이럼 허친슨은 프랑스로 건너가 고무장화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운명의 장난처럼 탄력성이 우수한 고무를 개발한 굿이어는 정작 불운했다. 하지만 황을 이용해 폴리이소프렌 중합체의 구조를 혁신시킨 덕택에 자동차와 항공기 등 교통수단은 진보했다. 도로와 공항과 같은 사회간접자본도 그 규모를 키웠음은 물론이다. 굿이어의 이름을 따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세이버링은 굿이어타이어앤드러버컴퍼니를 설립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천연고무를 대체할 합성고무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합성고무가 등장했고 천연고무를 대체해 나갔다. 하지만 타이어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합성한 것이건, 천연에서 유래한 것이건 고무의 생산량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고무 발견의 역사를 보면 우연과 인간의 노력이 잘 버무려진 흔적이 역력하다. 역시 필요가 발명을 촉진하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현재 인도와 중국 및 아프리카에서 타이어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후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천연고무를 대체할 혁신적인 방법이 절실해 보인다. 이제껏 그래 왔듯 인류는 이런 문제를 무난히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모든 기술적 혁신에 앞서 우리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을 유지하려 한다면 최소한 네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지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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